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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아름다운 시절 PROVENCE, 김태수, 황소자리, 2009

햇살처럼-이명우 2012. 9. 25. 09:14

318. 프로방스에서 보낸 100일, 아름다운 시절 PROVENCE, 김태수, 황소자리, 2009

프로방스는 1997, 1998년 프랑스 영화 <마르셀의 여름>, <마르셀의 추억>이 잇따라 개봉되면서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시장에서 한 살림 장만하고 나오면서 괜스레 뿌듯했다. 적어도 20~30% 비용은 절약했겠지 하고 생각했다. 프로방스 시장에서도 과일은 분명히 더 쌌고 올리브 절임이나 포마주, 소시지 등은 소량이라도 원하는만큼 살 수 있어 편리했다. 하지만 시장 물건 값이 동네 슈퍼나 대형 마켓보다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시장은 물건을 싸게만 파는 곳이 아니다. 싱싱하고 믿을만한 물건을 거래하는 곳이다. 손님들은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시장에 온다. 장사꾼들도 친절하지만 비굴하게 굽실거리지 않는다.

옛 말에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게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가뭄 때 제 집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음식들어가는 것

분노는 그것을 갖고 있는 자를 황폐하게 만든다.

 

프랑스의 위대한 소설가 발자크는 카페를 '민중의 의회'라고 말했다. 멋있는 말이다. 이런 말을 놓고 곧이곧대로 '카페는 민주주의의 온상'이네 뭐네 하면서 뒷풀이를 할 마음은 없다. 그저 '프랑스 사람들이 카페에 많이 가는구나' 하면 그만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에 카페가 50만개나 됐다니 하는 말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파리 몽마르트르의 카페 '게르부아'에서 미술사의 혁명을 도모하고 사르트르가 '카페 레 되 마고'에서 실존을 붙들고 씨름한 것도 그래서 새로울 게 없다. 그들이 거기 아니면 어딜 갔겠는가. 기껏해야 다른 카페로 갔을 것이다.

  카페와 관련된 말 주에 내 귀에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카페에 가기 위해 카페 간다'는 말이 그것이다.

프로방스에서 탐나는 것 중 하나는 해변 카페다. 요트의 돛대가 빼곡하게 서 있는 마르세유의 부두, 맨발을 모래에 묻을 수 있는 칸 비치, 코 앞까지 파도가 튀는 망통의 해안도로, 최고급 요트가 정박해 있는 생트로페 해변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펼쳐져 있었다. 그 카페에서 3~4유로짜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툭 트인 지중해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슬픈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한낱 꿈일 뿐이라고"로 시작하는 롱펠로의 시 < 인생예찬>을 읊조리게 된다.

 

프로방스에서 북쪽으로 500km 떨어져 있는 알프스 인근 도시 앙시의 카페는 아름다움이 도를 넘었다. 알프스에서 내려온 물이 성질급하게 흐르는 소로 곁에 카페가 죽 늘어서 있는데 하나하나가 다 작품이다. 하루 동안 일없이 카페를 세곳이나 들어간 건 거기가 처음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광객의 예의에 어긋난다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다. 카페를 열 새악이 있는 분, 실내장식을 아는 분들이라면 그곳에 한 번 가보시기를 바란다. 마음 놓고 사진 찍어도 저작권 어쩌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인테리어 아이디어 얻기에 그만이다.

 

프랑스 카페는 300년 동안 정치 토론장, 시 낭송장, 미술 전시장, 도박장, 매춘굴, 휴식처 기능을 했다고 한다.

 

'이 곳 자연은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다. 어디에서나 하늘의 둥근 지붕 밑은 모두 눈부신 파랑이고 태양은 맑은 유황빛을 찬란하게 비추지. 너무 부드럽고 사랑스러워 마치 베르메트 그림속의 천상의 파랑과 노랑의 조합 같아 보이지. 그렇게 잘 그리지 못하겠지만 나는 너무나 사로잡혔다. 그래서 어떤 규칙도 생각하지 않고서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있지' -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내가 프로방스로 떠나기로 한 건 어느 정도는 화가들 때무이기도 했다. 엑상프로방스가 고향인 세잔을 비롯해 모네, 르누아르, 샤갈, 레제, 피카소, 시냐크, 뒤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화가들이 프로방스를 찾았다.

 

프랑스를 여행할 때는 나이키 조깅화처럼 바닥이 정교하게 파인 신발은 웬만하면 피하길 권한다. 한 번 밟았다하면 신발바닥을 원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가스마스크라도 하나 장만해야 할 판이다. 모르실까봐 하는 말인데 프랑스 개똥에서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향수 냄색 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개똥 문제는 어떻게보면 겉으로 드러난 프랑스인의 치부일지 모른다. 사회구성원 각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는 프랑스식 민주주의에 시비를 것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렇다고 개에게 보장하는 배설의 자유까지 인정해야 한닥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개똥은 공중도덕을 개똥같이 여기는 프랑스인들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개를 운동시킨다는 핑계로 집 밖에서 볼일을 보게 하는 건, '내 뒷마당은 안된다'는 이기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nimby : not in my back yard

 

긴 세월 동안 나는 어쩌면 파란 불 보다 빨간불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해도 된다는 사인은 무시하고, 하면 안된다는 이유만 수도없이 나열하며 교차로에 머물러 있던 삶은 아니었을까? 그런 내게 프로방스는 무차별적으로 파란 신호등을 켜주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라고 말하듯이.

 

생트 빅투아르('세잔' 작품있음) 산에서 "여기서도 너만 생각해"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 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 때 까지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노라.

                           - 셰익스피어 -

 

"내가 현존하는 한 죽음이 현존하기 않고, 죽음이 현존하는 한 내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 에피쿠로스(그리스 철학자)-

 

"추억의 힘"

 

 

2009.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