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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꼬마 한스와 도라(프로이트 전집 10), 지그문트 프로이트, 열린책들, 1997

햇살처럼-이명우 2013. 8. 16. 17:55

414. 꼬마 한스와 도라(프로이트 전집 10), 지그문트 프로이트, 열린책들, 1997

엄마가 자신의 성기에는 왜 손을 대지 않느냐고 했던 일이다. 엄마에 대한 이러한 고조된 애정이 갑자기 불안으로 바뀌고, 그 불안이 다시 억압의 심리로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억압의 계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나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억압의 심리는 아마도 아이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높은 강도의 흥분에서 유래한 것 같다.

 

어린 탐구자는, 모든 지식은 불완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단계마다 풀리지 않은 잔여물을 뒤에다 남겨 놓는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 경험했을 것이다.

 

한스에 대한 분석의 결과를 이와 같은 목적으로 이해하는데 대해 제기괸 두 가지의 이의(異意)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꼬마 한스는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며 실제로 일어난 사건, 즉 그의 공포증 질환에서 알 수 있듯이 신경증의 성향을 타고난 어린 <병약자>이며, 그러므로 한스의 경우에나 타당성을 지닐지 모르는 결론들을 다른 정상적인 아이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이의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상론할까 한다. 그 까닭은 그 같은 이의가 내 관찰의 가치를 일부 제한할 뿐, 그 가치를 완전히 무효화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보다 더 강력한 이의에 따르면, <나의> 이론적 관점에 사로잡혀 있고 또한 <나의 >편견의 포로가 되어있는 아버지에 의해 주도된 아들에 대한 정신분석은 절대로 객관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암시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또 언제 그것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냥 심리영역에서 나타나는 다루기 힘든 모든 것에 대해 <암시>라는 명칭을 붙여서 쓰고 있다. 아이들은 하는 말은 너무나 자의적(自意的)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견해에 대해 나는 찬동하지 않는다. 심리영역에서는 절대 자의적인 것이란 있을 수 없다. 아이들이 하는 말에 신뢰성이 결여되는 까닭은 여기에 그들의 상상력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른들이 하는 말에 편견이 개입됨으로써 그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볼 때 아이들이 어른들 보다 진실을 사랑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신분석은 공평무사한 과학적 탐구가 아니라 하나의 치료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요체(要諦)는 무엇을 증명하는데 있지 않고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가벼운 정신질환은 주변의 도움없이 환자 자신의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지만, 신경증은 절대 그렇지 않다. 신경증은 환자에게 마치 낯선 그 무엇처럼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질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개입해야만 하고 그 다른 사람이 도움이 되는 한 신경증은 치료가 가능하다.

 

한 가지 정신병 사례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신경증의 구조와 전개양상에 대한 분명한 인상을 획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우리가 이어서 수행해야할 종합적인 작업에 속한다. 꼬마 한스의 공포에 대해 그와 같은 종합작업을 시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정신적 기질, 그의 주도적인 성적욕구, 그리고 여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그가 체험한 것들에 대한 설명을 우리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의 어버지가 어린 한나의 <출생>과 어느 정도 관령이 있음에 틀림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한나와 그 자신(한스) 즉 한스를 자기 아이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 세상에 낳아준 사람은 그가 아니라 분명히 엄마였다. 바로 이 아버지가 한스에게는 엄마를 독차지 하는데 방해물이었다. 아버지가 있으면, 그는 엄마와 함께 잘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한스를 자기 침대로 끌어올려 함께 있으려고 하면, 아버지가 마구 소리를 지르곤 했다. 한스는 경험을 통해서 아버지가 업으면 정말 좋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가 아버지를 제거하고 싶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에 대한 그의 적대심을 한층 강화시켜주는 일이 생겼다. 즉 아버지는 그에게 황새가 아이를 이 세상에 데려온다는 거짓말을 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한스가 알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아버지는 한스가 엄마와 함께 침대에 있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한스가 알고 싶어하는 것 마져도 알려주지 않는다. 한스의 아버지는 한스에게 두 가지 방향에서 불이익을 끼친 것이다. 이것은 분명 한스 아버지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스가 자신의 경쟁자로 증오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아버지가 바로 자신이 늘 사랑했고 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리고 그의 모범이었고, 그의 첫 번째 놀이친구였으며, 자신이 갓난 아이였을 때 자신을 돌보아 준 그 아버지였다. 이것이 한스에게는 생의 첫 감정적인 갈등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결책을 금방 찾을 수는 없었다. 한스는 타고난 천성으로 인해 우선은 사랑이 우위를 점하여 증오심을 억눌렀다. 그러나 그의 사랑이 증오심을 완전히 죽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증오심은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끊임없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도라의 히스테리 분석

몰지각하고 악의적인 비판자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할지라도 환자 병력 기록부의 출판은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 여려움은 기술적인 문제 이외에도 상황의 성격 자체에서 비롯된다. 히스테리 발병의 원인은 심리적 측면에서 파악한 성생활의 은밀함에서 찾을 수 있으며 히스테리 증상은 가장 비밀스럽게 억압된 욕망의 표현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은밀함을 들추어 비밀을 벗겨내는 작업이 곧 히스테리를 설명하는 지름길이다. 자신의 고백이 학문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챌 경우 환자는 아무것도 털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환자에게 출판에 대한 승낙을 얻으려는 시도 역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섬세한 감정을 지닌 소심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의사의 비밀엄수 의무를 앞세워 학문이 이 분야에서 계몽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음을 아쉬워 할 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의사는 개별환자에 대한 의무뿐만 아니라 학문에 대한 의무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학문에 대한 의무는 다시 말해서 똑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들에 대한 의무이다. 해당 환자의 신상(身上)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히스테리의 원인과 구조에 관한 지식을 널리 알리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에 속한다. 반대로 이 일을 방치하려는 태도는 굴욕적인 비겁함을 뜻한다. 내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기술과 과학 뿐만 아니라

인내심도 작업에 필요하다.

 

프로이트(1856~1937) 오스트리아 출생, 런던에서 사망(83세)

 

2011. 4. 7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