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 역사 풍속 기행, 이의화, 역사비평사, 1999
역사철학이 역사 진전에 따른 역사의식을 제시한 방법론이라면 역사풍속은 인간 삶의 방식에 따라 이루어진 풍속들, 그 시대적 전통적 가치를 규명하는 분야입니다.
'장풍득수 藏風得水' "풍수의 법은 산 속에서 돌아나오는 물을 얻는 것(得水)이 가장 좋고, 바람이 흩어지지 않게 잘 간직하는 것(藏風)이 그 다음이다."
늑장(勒葬) - 권세를 부려, 남의 땅이나 남의 동네 가까이에 억지로 장사지내는 것
유장(誘葬) - 사기를 쳐서 남의 묘지를 차지하는 것
조선시대 <규합총서> 빙허각 이씨가 음식에 대해 쓴 책. 봄에는 신맛, 여름에는 쓴 맛, 가을에는 매운 맛, 겨울에는 짠 맛이 위주.
승려사회의 세 계층
이판승 - 철저한 전등(선사의 불법 또는 의발을 전하고 지키는 일)의 전통에 따라 도맥을 지키는 파로, 선승 또는 학승으로 불릴만큼 자기 수양과 불법을 익히는 순수한 종교집단.
사판승 - 왕실의 원찰이나 양반 부녀자의 비호를 받고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승려, 이들은 현실에 영합하여 때로는 권문세가에 빌붙고, 때로는 부녀자의 기복을 이끌면서 어용화 되었다.
땡추 - 불교 탄압을 일삼고, 독점적으로 권력을 누리며 비리를 저지르는 지배층에 저항한 무리.
이판승과 사판승은 말로 다투다가 안되면 멱살을 움켜잡고 드잡이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래서 싸움을 걸 때 "이판사판 한 번 붙자"는 따위의 말이 생겨났다.
조선시대 4명의 여인 신 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민비
이 네 명의 여성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개성적인 삶을 살아갔다. 신 사임당은 유교교양을 익히고 그 가르침에 따른 삼종(三從)의 부덕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녀는 시에서 서정을 노래하고 효도를 읊었지, 한이나 인간의 고통을 주제로 삼지 않았다. 그림에도 꽃, 벌 따위를 그렸지 생활을 묘사하지 않았다. 조선사회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여성의 귀감이 되었따. 그래서 후세 여성들이 그의 삶을 본받기에 회의나 주저가 있을 수 없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강릉에는 기념관이 세워져 있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 어느 여성단체에는 오늘날에도 그녀를 본받아야 한다고 신 사임당 상을 제정하여 이른바 현모양처 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창조적이지 않았다. 그저 고분고분한 여성, 교양있는 여성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종속관계의 사회에서 태어나 살다간 하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조선시대 유교의 교훈에 철저한 선비들에게 모범이 되는 여성상이다.
황진이(왕실의 벽계수, 조정 원로대신 소세양, 10년 면벽의 지족선사까지 유혹)는 신분차별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굴레를 쓰고 살아가면서 이를 비웃고 저항하고 한탄하였다. 그렇다고 행동으로까지 보인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기생으로서, 시와 노래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녀는 분명히 명기였다. 그리고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서경덕을 만나서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경덕이 추구한 기철학은 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분의 차별이나 여성의 굴레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들이 자연의 법칙을 역행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녀는 여기에 깊이 빠져 진리를 터득하려고 애를 썼다. 그 깨달음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는 알길이 없으나 무상함을 느끼고 죽어갔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창조적인 삶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그러나 기생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허난설헌(동생 허균, 스물일곱에 사망, "붉은 부용꽃 서른아홉송이가 차가운 달에 떨어졌네" 자신과 죽은 자식들 나이들의 합)은 신사임당과 같이 양반집 규수였다. 그러나 추구한 길이 달랐다. 그녀의 총명과 자각은 맹종을 거부하였다. 그녀는 여성의 예속과 자신의 처지를 깊이 인식하고 한탄과 분노로 가슴을 저미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세가지 한(三恨)을 노래하였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오. 세째는 부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조선의 여성이 갖는 지위가 어떤 것인지를 자각하였다. 그녀의 시에 한과 원망과 이상사회를 그렸다. 만일 그녀가 남성으로 태어나 시단에 올랐다면 그 영향은 컷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마저 자유스럽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도 예사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용납되지 않은 삶을 추구할 적에 천재가 가야할 길을 갔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민비(경기도 광주 민치록의 딸, 조실부모한 무남독녀)는 종속관계의 권력구조에서 파행의 방법으로 일구어낸 여성권력의 상징이다. 따라서 권력지향적 여성들에게 하나의 심리정화 작용을 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명성황후라고 기리고 있다. 이 시호는 실질이 없는 추대라는 사실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녀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도 만들어져 그녀의 공적을 선양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인의 욕망을 채우고 복수를 한 수준이었다. 역사의식도 없었고, 개혁을 도모할 줄도 몰랐다. 오히려 19세기 위기의 시대에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고 간 책임이 더 컸다. 다만 그녀는 여성으로서 신라의 선덕여왕도 누리지 못한 권력을 휘두른 표본이 되었을 뿐이다. 민비는 여걸이었지 여성정치가는 되지 못했다.(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에 치를 떨었다. 그리하여 부모나 형제자매가 없는 고아요, 집안도 몰락한 민비를 왕비로 간택하였다. 열다섯에 궁중으로 들어온 민비는 대원군이나 고종의 총애를 입지 못했다.)
조선시대 여성의 전형으로 내세운 이 여성들은 분명히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제한된 범주 안에서 살며 활동한 수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조선의 제도와 통념에서 여성이 획득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지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구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서도 이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처럼 여성이 두 번 시집가는 것을 막는다거나, 첩 또는 재가녀의(再嫁女) 자식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는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조선시대의 이런 차별이나 제한으로 수많은 여성이 재능을 묻어두고 죽어갔으며 사회에 기여할 통로가 막혀 역사발전에 기여하지 못하였다. 신분제한과 함께 여성지위의 불일치는 역사발전에 하나의 장애요인이었다.
보부상-보상과 부상
보상 : 봇짐장수는 혁대, 칼, 모자 또는 금, 은 세공품등 이를테면 고급 물종 선택 취급
부상 : 등짐장수는 옹기, 소금, 방망이, 자리, 짚신 등 가내수공업 위주로 팔았다.
임방 : 각 고을에 설치된 보부상의 침식, 질병, 장의(葬儀)를 돕도록 운영된 방. 이성계 때 설치.
1985년 호구조사 결과 성은 275가지.
성이 없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놈들'과 '년들'
대체로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었다.
일본에도 성이 없었다. 토요토미도 성을 세번 바꾼 것으로 알려져있다. 메이지 유신 후에 호적이 생기자 성을 마구 지었다고 한다. 성이 없었던 무식한 일본사람들은 서기에게 적당히 성을 만들어 호적에 올리게 하였다. 난처해진 호적서기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 집의 특징을 듣고 언덕바지에 집이 있으면 '기시(岸)로, 밭을 많이 가꾼다면 한자로 복된 밭의 뜻인 '후쿠다(福田)', 개를 기른다면 '이누가이(犬養)'로 성을 지어 호적에 올렸다. 특히, 일본에서 두자 성이 많은 것은 중세부터 백제 왕실의 성을 본 받은데 있다.
<천자문> 중국의 주흥사라는 학자가 어린이들이 글을 배우기에 앞서 기초가 되는 글자 천자를 뜻에 따라 배열해 놓은 것이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어찌나 골몰했던지 이 책을 다 쓴 뒤,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지현황, 언재호야'까지.
천자문 - 동문선습, 명심보감, - 사략, 통감 - 소학, 효경
사략 - 중국인 증선지가 중국 태고부터 송나라 때까지 역사를 기록한 책
통감-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중국사람 강소미가 뽑아 간략하게 한것. 통감절요, 주나라부터 오대까지 역사를 엮은 것.
소학-주희의 제자 유자징이 스승의 가르침을 엮은 것
효경-공자의 제자 증자가 엮었다는 설이 있다.
과거 - (문과, 무과) 초시(初試) - 복시(覆試)
- 잡과 (역과(譯科)-통역, 의과-의원, 음양과-천문등, 율과-법률등) -초시, 복시
조선시대 관리제도는 문관 위주였기 때문에 앞의 여러과 중에서도 문과를 가장 중시했다.
문과에서 첫 시험은 생원, 진사로 나누어, 곧 각자가 사는 곳인 서울과 여러 감영에서 시험을 보며 이를 향시라고 부른다. 이의 합격자 1,400여명을 모아 서울에서 2차 시험을 본다. 이것을 생원진사 '초시'라고 부르는데 240명을 뽑았다. 그런데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은 향시에 합격한 자만이 아니라 서울의 중등교육기관인 동학, 서학, 남학, 중학 들 4학과 지방향교에서 응시자격을 얻은 학생들이 포함되었다.
여기에 합격한 사람들을 생원, 진사라 한다. 생원, 진사만 되면 지배층에 속하는 사류(士流)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요, 성균관에 들어가 약 3년간 연수를 쌓아 정식 문과에 합격해 벼슬을 얻을 수 있었다.
통례의 시험은 3년마다, 즉 간지에 자(子), 오(午), 묘(卯), 유(酉)가 드는 해에 보게 되어 있었다. 생원,진사 시험은 정식문과 시험이 있기 몇달 전에 치렀다. 이 초시 합격자들과 일부 추천을 받은 유학(幼學)이 서울에 모여 시험을 치렀다. 마지막으로 정식문과 합격자 33명을 가려냈던 것이다. 이를 문과 복시라 한다.
정식 문과, 무과의 경우 33명의 급제자들은 옷깃을 여미고 엄숙한 표정, 경건한 마음으로 근정정 뜰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임금 앞에 나아가 숙배(肅拜)를 올린다. 무과 급제자들과 함께 들어갔을 경우, 문과 급제자는 오른쪽, 무과 급제자들은 왼쪽에 정렬한다. 임금은 이들에게 '홍패(紅牌, 붉은 종이에 쓴 합격증서)'를 내려주고, 세 가지 색깔의 무궁화 송이로 만든 어사화를 하사한다. 이와 함께 잔치에 쓸 술도 내려준다.
과거 합격자에게 벼슬을 줄 적에는 '서경(署經)'이라는 제도를 두었다. 즉, 신상명세서를 적어 올리게 한 것이다. 이것은 합격자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행적을 알아 우대하려는 뜻도 있었으나, 부정한 자손에게는 좋은 벼슬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고(物故) - 죄인으로 옥사하는 것
2014.2.15.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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