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 국가와 역사, 시오노 나나미, 혼 미디어, 2015.
아우구스투스도 자기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허나 그것은 극복이라는 말을 갖다 댈 만큼 대단한 각오는 아니었다. '몸을 사렸다'는 말이 그에게는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소화기 계통이 약했던 그는 아무리 중효한 인사를 초대한 저녁 만찬이더라도 마시고 싶지 않으면 포도주 잔에 입도 대지 않았고, 먹고 싶지 않으면 요리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허기를 느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집어 먹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다 드러나는 로마군복을 입을 때도 보통은 군복 속에 속옷을 한 벌 정도 입기 마련인데 아우구스투스는 네 벌이나 껴입었다. 피곤한 때는 언제 어디서나 별실로 들어가 몸을 누이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로마 황제라면 숙명이나 다름없는 전투에 나가서도 지휘는 아그리파라는 장군에게 일임했다.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의 형편없는 전투실력을 꿰뚫어 본 카이사르가 손수 발탁해서 아우구스쿠스에게 붙여준 '오른팔'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그런 아그리파에게 모든 지휘권을 맡겼다. 이 또한 아우구스투스가 주위의 평판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리하지 않고 몸을 사린 덕에 아우수스투스는 일흔일곱살까지 장수를 누리며 40년 넘게 장기집권을 했다. 그는 '로마에 의한 제국 질서 확립'이라는 전임자 카이사르의 의지를 정확하게 이해했고, 그 뜻을 승계하겠다는 각오를 가슴 깊이 새겼다.
아우구스투스는 평생에 걸쳐 카이사르라는 천재적인 모델을 따라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는 비록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지만,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 직시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가 맨 먼저 직시한 현실은 자신은 카이사르와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 부족함을 메워줄 인재들을 곁에 두었다. 아그리파는 군사적인 면에서, 마이케나스는 외교적인 면에서 그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 준 평생의 친구들이었다.
그가 직시한 두 번째 현실은 자신의 힘이 약하다는 것과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자제력을 발휘할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을 어리다고 얕보는 안토니우스의 방종을 참아내고 결국 그를 꺾고 로마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패권을 쥔 뒤에도 카이사르의 사례를 잊지않고 제정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지 않는 신중함을 보였다.
진정한 개혁은 5년(3년) 안에 완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반드시 후임승계가 필요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개혁이든 예외는 없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예술과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글은 곧 인품'이라는 말이 있다. '글' 뿐만 아니라 '관점'에서도 인품이 드러난다. '어떤 영웅이라도 하인의 눈으로 보면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인 하인의 눈으로 보는 까닭에 비범한 영웅도 한낱 필부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로마제국이 쇠망의 길로 접어든 때에도 한심하고 못난 인물들만 남았던 건 아니다. 서양문명의 대부분을 이룩했다는 로마인들 아닌가. 나라가 망하는 비극은 인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재가 있어도 그 활용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이러한 사실을 통감하게 하는 훌륭한 인재들이 융성기에 비하면 적은 수이기는 해도 엄연히 존재했다.
어떤 동물이건 부모는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는 성심성의껏 돌보고 키워주지만, 목표는 자식의 홀로서기다. ~독립의 조건은 매주 한번씩 반드시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약간의 응석도 허락한다.~ 아이들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고, 자식은 어머니가 지켜보는 밥상머리에서도 자란다.
"저는 '타인에게는 타인의 신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누군가 생을 지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신은 그것을 응원해 줄 뿐인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도는 인간의 생을 지배하는 것은 유일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로마인에게는 독선, 즉 불관용으로 비쳤을 겁니다. 로마인의 눈으로 보자면 일신교의 계보는 야만입니다. 오늘날의 '순교'도 '성전'도 '자폭테러'도 야만일 뿐입니다. 일신교에 의해 다신교 문명이 사라지면서 로마가 패망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책에서 지식을 얻고 감동받는 행위는 근사한 일이지만 이는 수동적인 독서다. 책을 사서 읽는다는 행위에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꿈' 이나 '여유', '아름다움'은 개인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모두 동일하지 않다. 이렇듯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기가 불가능한 사안은 종교인이나 시인이 담당할 분야이지 정치가나 관료가 참여할 일이 아니다. 인간사회는 다양한 생각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집합체다. 타인의 전문분야에 참견하는 것은 타인의 생존 이유를 침범하는 행위와 같다.
무엇보다 먼저 '우아하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우아함의 필수조건은 대담하며 관능적이면서도 천박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바꿔말하면 허와 실이 종이 한 장 차이의 관계이듯, 대담함과 관능과 품위 또한 미묘한 차이의 가치라는 말이다. 우아함과 조용한 긴장감은 동전의 양면 같은지도 모른다.
술에 취하면 이점도 있다. 내 마음대로 '술꾼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이름붙인 플라톤의 <향연>에 나온다. 원제인 '심포지엄(symposium)'이 뜻하는 바는 연애를 주제로 삼은 토론장이다. 현대와 마찬가지로 2,500년 전의 아주 먼 옛날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심포지엄도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와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는 동안은 몹시 지루했다.
그런데 술취한 알키비아데스가 갑자기 난입하여 분위기가 급변한다. 페리클레스,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미남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알키비아데스가 그리스 최악의 추남 소크라테스에 대한 애정을 술김에 고백한다. 이는 한낱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못한다는 깨달음이 안겨주는 관능적인 희열이 얼마나 큰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에 느끼는 겸허함이야말로 지적욕구에는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닌지,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일깨워 준 소크라테스를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토로한 것이다.
술기운을 빌린 고백이었지만 이토록 진지한 사랑고백을 나는 보지 못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맹세하는 발코니 장면조차도 소년의 순진한 말장난으로 들릴 정도다. 그에 비하면 중년의 알키비아데스가 초로(初老)의 소크라테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눈물이 핑 돌 만큼 정신적으로 큰 감돌을 준다. 뿐만아니라 그 순간 관능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기운이 몸을 감싸 희열감을 더해준다. 지적욕구, 다시말해 철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철학이 왜 그리스에서 생겨났는지는 <향연> 속에 그려진 이 한 장면만으로도 모든 설명이 이루어진다.
청춘이란 스스로도 통제하기 힘든 야망에 힘겨워하는 뒤숭숭한 계절이다.
개혁이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루비콘 강을 건너는 모험이다. 강을 건넌 뒤에 총리가 바뀌었다고 해도 결코 뒤집지 못할 지점까지 단숨에 돌파해야 비로소 '해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소신을 보지말고, 그 소신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보아라." - 리히텐 베르크
날이갈수록 점수 지상주의는 경기를 여성화 한다. 승마도 마찬가지다. 장애물을 하나쯤 떨어뜨렸어도 이미 말은 그 장애물을 넘은 것이다. 체조경기도 똑 같다. 아주 사소한 실수를 체크하여 점수를 책정하는 방식은 체조기술 특유의 대범함을 없앤다. 혹자는 어떤 기준에서든 경기에 격차를 두지않으면 승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른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교육이 어떤 인간을 길러냈는지 보기만해도 그 한계는 뚜렷이 드러난다. 성적지상주의 교육은 대세를 가늠하는 능력이 없는 지도자를 육성했다. 점수 지상주의는 스포츠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밀어냈다.
점수지상주의는 단순히 패자가 누구인지 가리는 수단이다. 그 점에만 치우치다간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린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지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지속하는 의지, 자기제어의 다섯가지를 갖추었습니다.
로마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다. 많을 때는 그 수가 30만을 헤아렸다. 더욱이 살아있는 사람을 신으로 믿기까지 했다. 로마인들은 다른 민족의 신을 배척하지 않고 기꺼이 수용했다. 만신전인 판테온은 지중해 모든 나라의 신을 모신 곳이다. 남의 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남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무함마드의 탄생 570년. 613년 이슬람 포교.
기독교 로마제국의 공인종교가 되는데 걸린 시간 300년.
이슬람이 지중해를 물들이는 데 100년, 신흥종교의 돌파력과 아랍민족의 정복욕을 알려준다.
흔히, 이상적인 지도자의 조건으로 인격의 원만함이나 덕성 등을 요구하는데, 인격이 고결한 것과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인격에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큰 목적만 달성하면 그것이 좋은 지도자인 것입니다.
는 결과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지 의도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는 아무리 나쁜 사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작된 원래의 계기는 훌륭한 것이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
시스템과 외부환경, 혹은 그 시스템 여건의 조화는 시간이 지남네 따라 어그러진다. 이것이 인간인 만드는 역사이다. 따라서 위기가 닥쳤을 때 낡은 시스템을 모조리 부정해버리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2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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