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 안나 까레니나, 톨스토이, 범우사, 2005.
그 유명한 구절,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
스테판 아르카지치 오블론스키 공작, 스치바(안나의 오빠)
돌리(스치바의 아내)
브론스키
레빈
키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안나의 남편)
세상에는 만사에 행운을 지닌 자기 경쟁자를 대하게 되면 곧잘 상대방의 모든 장점은 무시해버리고 다만 결점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그 행운을 지닌 경쟁자 속에서 무엇보다도 자신을 패배시킨 승리의 특질을 발견하고자 심한 마음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찾으려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 레빈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안나가 웃으면 그 미소가 곧 그에게로 옮겨갔으며 안나가 생각에 잠기면 그도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키치의 두 눈을 자꾸 안나의 얼굴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소박한 검정 옷을 입은 안나의 그 매력, 팔찌를 낀 그 풍만한 두 팔의 아름다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칼의 그 물결치는 듯한 아름다움, 조그마한 수족의 그 우아하고 경쾌한 동작의 매력, 생기가 넘치는 그 아름다운 얼굴의 매혹......, 그렇지만 그녀의 아름다움 속에는 뭔가 잔혹하고 무서운 것이 있었다.
"준마(駿馬)는 그 낙인으로 알고, 사랑하는 젊은이는 그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안나의 남편)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질투란 그의 신념에 의하면 아내를 모독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에 대하여 신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다. 왜 신뢰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왜 젊은 아내가 항상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그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아내에 대하여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또 신뢰감을 가져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질투란 수치스러운 감정이므로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확신이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비논리적인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직면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곧 삶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즉, 자기의 아내가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은 그에게는 매우 불합리하고 기괴한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생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안드로비치는 그의 전 생애를 생활의 반영인 직장에서 살고 일했기 때문에 생활 그 자체와 마주칠 때 마다 몸을 피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마치 절벽에 걸려 있는 다리를 유유히 건너오는 사람이 별안간 그 다리가 부러져있고, 그 밑에는 심연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그 심연은 생활 그 자체이며 다리는 그가 살아온 인공의 세계였다. 아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의혹이 생전 처음으로 머리 속에 떠올랐기 때문에 그는 이 사태에 직면하여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한 대의 마차와 그 속에서 쑥 나와 있는 검정 모자와 낯익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귀가 보였다. '아이 참, 공교롭게도 묵고 갈 생각인지도 모르겠군'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자 그것으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너무나 무섭과 끔찍했기 때문에 그녀는 일각이라도 그 일을 머리 속에서 더 생각하지 않고 쾌활하고 빛나는 얼굴로 그를 맞으러 뛰어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몸 속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허위와 기만의 영혼이 숨쉬고 있음을 느끼면서 곧 그 영혼에게 몸을 맡기고 자신도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럼, 안녕! 당신 이따가 차 드시러 오셔야 해요. 아아, 기뻐! " 그녀는 기쁨에 넘친 환한 얼굴로 나갔다. 그러나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자기 손에 남편의 입술이 닿았던 것을 느끼고 혐오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콘스탄틴 레빈에게 있어서 시골이란 생활의 무대, 즉 기쁨과 슬픔과 노동의 무대였다. 그러나 세르게이 이보노비치에게 있어서 시골이란 한 편으로는 노동 뒤의 휴식이었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 효과를 믿고 기꺼이 복용하는, 퇴폐에 대한 효력있는 해독제와 같은 것이었다. 콘스탄틴 레빈에게 있어서 시골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익한 노동의 활동무대라는 점에서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 있어서 시골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도 된다는 점에서 특별히 좋았다.
위선은 무슨 일에 있어서나 가장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무리 지혜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교묘하게 위장한다고 하더라도 금새 그것을 알아채고 배격하고 마는 것이다.
레빈은 주의 깊게 바니카 파르메노프와 그의 아내를 지켜 보았다. 그들은 그에게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건초를 쌓고 있었다. 이반 파르메노프는 수레 위에 올라서서 젊고 미인인 그의 아내가 처음에는 한 아름씩, 그 다음에는 쇠스랑으로 솜씨있게 그에게 건네는 큼직한 건초다발을 받아서 판판하게 다듬어 놓고는 그 위를 밟아대고 있었다. 커다랗게 뭉쳐진 건초는 담숨에 쇠스랑에 걸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먼저 그것을 판판하게 펼친 다음 그것에 쇠스랑을 찔러넣고, 그 다음엔 탄력성 있고 재빠른 동작으로 그 위를 자기 몸의 온 무게로 눌렀다. 그리고는 곧 빨간 허리띠를 맨 허리를 굽혔다고는 몸을 반듯이 펴고 하얀 앞치마 밑으로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 보이면서 솜씨있는 몸짓과 함께 두 손으로 쇠스랑을 잡아 풀 다발을 수레 위로 높이 던져 올렸다. 그러면 이반은 분명히 그녀를 조금이라도 쓸데없는 수고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애쓰면서 던져진 다발을 두 팔을 넓게 벌려 받아서 그것을 수레 위에 판판하게 펼쳤다. 마지막 풀을 갈퀴로 건네고 나자, 아내는 목덜미에 흩어진 풀잎을 털어내고 그을리지 않은 하얀 이마 위로 내려온 빨간 머리수건을 바로 잡은 뒤 짐을 묶기 위해 수레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반은 그녀에게 밧줄을 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으나, 그 때 그녀가 뭐라고 얘기한 것에 대해 큰 소리로 껄껄거리며 웃음을 떠뜨렸다. 이 두 사람의 얼굴에는 힘차고 싱싱한, 눈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랑이 넘치고 있었다.
'자, 그래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를 어찌해야 하나?' 레빈은 이 짧은 밤을 지새워가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자기자신에게 분명히 하려고 애쓰면서 이렇게 자문해 보았다. 그가 생각하고 느낀 바는 모두 세 갈레의 사상적인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하나는, 자기의 낡은 생활의 부정, 무용한 지식의 부정, 아무데도 쓸 데 없는 교양의 부정이었다. 이 부정은 그에게 만족을 가져다 주었고, 그로서는 쉽고 간단한 일어었다. 또 다른 하나의 사상과 공상은 그가 현재 누리고 싶어하는 생활, 바로 그것에 관한 것이었다. 그 생활의 소박함이며 순결함과 정당성을 그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생활 속에서 비로소 자기가 그토록 병적으로 그 부족을 절감하고 있던 만족과 안정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론스키는 자기가 말하려던 것을 당장 상기할 수가 없었다. 그는 최근에 와서 그녀에게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질투의 원인이 자기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에 대해서 식어가는 자기의 감정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몇 번이나 그녀의 사랑은 행복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안나는 인생의 모든 행복보다 사랑을 중하게 여기는 여자만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열하다고? 만일 그런 말을 쓰고 싶다면 말하지. 비열하다는 것은 정부 때문에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서도 남편의 빵을 먹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야."
하권.
한편, 브론스키는 자기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바라고 있던 것이 완전히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그와 같은 욕망의 실현은 이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행복이라는 커다란 산에 비하면 겨우 한 알의 모래를 가져온 정도로 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이 실현은 행복이라는 것이 곧 욕망 실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범하는 것과 같은 과오를 그에게도 깨닫게 했던 것이다.
레빈은 결혼한 지 석달째가 되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가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예전에 했던 공상에 대해 환멸을 느꼈고, 뜻밖의 매혹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가정 생활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그것이 자기가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한 걸음 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거룻배의 미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그 뒤 자기가 그 거룻배에 타고 느끼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조용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가를 잠시도 잊지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발 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저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 있을 때에는 손 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무척 즐겁기는 하나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은 자세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발을 꼰 채 똑같은 자세로 몇 시간이고 앉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발을 꼰 채 똑같은 자세로 언제까지고 앉아있지 않으면 안될 경우에는 경련이 일어나고 발에 쥐가나고 자기가 뻗으려고 하는 쪽으로 마음이 집중될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자기의 사랑을 맹세했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 하나만이 지금의 그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로는 꾸짖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그녀를 꾸짖고 있었다. 그에게는 입 밖에 내놓기 마저도 부끄러울 만큼 굉장히 저속한 것으로 여겨졌던 사랑의 맹세를 그녀는 게걸스럽게 들이켜고 차차 가라앉았다.
모스크바에 온 후 처음에는 레빈은 시골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지출이라든가 여기저기에서 요구해오는, 피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지출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도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때 그에게 우연히 생겨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데 대해서 흔히 말하는, 한 잔 째는 말뚝처럼 목구멍에서 막히지만 두 잔 째는 매처럼 빨리 날아가고, 석 잔 째부터는 작은 새처럼 가볍게 지나간다고 하는 그런 심리상태였다.
가정 생활에 있어서 뭔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사이의 완전한 결렬이라든지 혹은 애정에 뿌리박은 의견의 일치가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지않고 부부관계가 모호하고 그것이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무슨 일도 실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부부가 서로 넌더리를 내면서도 오랜 세월을 그 모양 그대로 지내고 있는 가정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다만 완전한 결렬도 일치도 아닌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아내인 키치는 그가 유년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것과 똑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생활을 위해서 그가 최대한도의 존경을 하고 있는러시아 농민 중의 99퍼센트까지도, 아니 그들 전부도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가지, 그는 수많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에 다음과 같은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즉 자기와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 견해에 의거해서 다른 것을 암시하려고 하거나 설명하는 일 없이 자기로서는 그 해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까지 느끼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단순히 부정하기만 할 뿐 그러한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예컨대 유기체의 진화라든지 영혼의 기계적인 설명이라고 하는, 자기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문제의 해결에 아주 열중해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분만의 고통 속에서 한창 신음 하고 있을때 그에게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신앙을 갖지 못한 그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더구나 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느님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때의 기분을 받아들여주는 곳은 그의 생활의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 자신으로서도 그 때는 진리를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릇되어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차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무엇이나 다 이내 산산이 부서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은 그 때 그릇되어 있었다고도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때의 정신상태를 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것을 단순히 인간정인 약점에 뿌리 박은 것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그 순간의 추억을 더럽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괴로운 자기 분열에 빠져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정신력을 전부 긴장시켰다.
레빈은 최근 2년 간 느꼈던 사색의 흐름을 다시 한번 충분히 마음 속으로 재빨리 더듬어 보았다. 그렇게 하게 된 발단은, 사랑하는 형이 불치의 병으로 쓰러진 것을 보았을 때 마음에 떠올랐던, 죽음이라는 지극히 명확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앞길에는 고뇌와 죽음과 영원한 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여 이렇게는 도저히 살아갈 수 가 없다. 이 인생이 뭔가 악마가 심술궂은 조소라고 생각되지 않는 해석을 발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권총자살이라도 하는 수 밖에 없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중의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생활하고, 사색하고, 느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창 그러한 상태에 빠져있는 도중에 결혼까지 하여 많은 기쁨을 경험했고, 자신의 인생의 의의를 생각하지 않을 때에는 행복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는 훌륭하게 생활해 왔었지만, 사색이라는 점에서는 불충분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017.5.9. 대통령선거일 아침.
탄핵으로 박근혜대통령이 물러나고, 60일 이내에 치러야 하는,
프랑스는 39세의 마카롱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우리 국민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심상정의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선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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