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자신의 빛깔을 더 선명하게

햇살처럼-이명우 2020. 12. 15. 14:05

선명한 자기 색깔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다르다'라고 말할 때 그 속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 옳고 그름도 없다.

예를들어 개는 원숭이와 다르고 사람과도 다르다. 그것은 옳고 그름도 아니고 선악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는 말을 '틀리다'는 말과 혼용해서 쓰고 있다. "나는 너와 틀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혼용은 '다름'을 '틀림'이라는 잣대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는, 무의식을 가장한 잠재된 의도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인식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성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흑백만이 존재한다.

  중립이나 불편 부당이라는 좋은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곧잘 회의주의나 또 다른 야합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집단은 개인에게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흑 아니면 백, 친구 아니면 적, 집단의 규범과 기준에 일치하면 선, 그렇지 않으면 미풍양속을 해치는 위험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개인은 집단속에서 자신으로 살아남기가 어렵다. 

  그러나 흑과 백 사이에는 회색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이 세상의 모든 빛깔들이 존재한다. 빨주노초파남보로 대표되는 모든 가시적 색상이 바로 흑백 사이에 있다. 우리는 흑백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총천연색 컬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빛이 있는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흑백의 시대를 분명히 넘어서야 한다. 자신이 타고난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해야 한다. 붉은 빛은 더욱 붉어지고 푸른빛은 더욱 푸르러 져야 한다. 맑은 날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빛깔들이 자신들의 색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바다는 바다색으로 산은 산색으로 하늘은 하늘색으로 공존하기 때문에 세상은 눈이 부시게 찬란하다. 원래 타고난 빛깔을 덮고 있는 지저분한 오염을 닦아내면 자신의 고유한 색과 빛이 더욱 고와진다. 이것이 자기 수련의 진수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자유가 없다면,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이며 서로를 보완한다는 것을 믿지 못 한다면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빛깔로 빛나지 않으면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들만의 빛깔로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수평적 관계의 초석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수평적 충성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사자같이 젊은 놈들,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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