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 열광금지 에바로드, 장강명, 연합뉴스, 2014
제2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오타쿠(오덕후->덕후)의 이벤트 참여기를 영화 다큐멘터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박종현과 월드 스탬프랠리 완주 인증서를 같이 들고 사진을 찍었다. 종현은 자리를 바꿔가며 여러 테이블을 돌았다. 그는 대화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띄울 줄 아는 유능한 호스트였다. 가는 테이블마다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떠날 때에는 "아, 조금만 더 앉아있다 가세요"라는 아쉬움과 만류의 호소를 들었다. 그가 어느 한 테이블에 오래 앉아 있다 싶으면 다른 테이블에서 "이제 그만 이리 오세요."라며 그의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어머니의 조언 "항상 마토메(마무리)가 중요하다. 화장실 청소할 때 바닥을 걸레로 닦아도 계속 실밥이 남아있을 경우가 있거든. 그럴 때는 그냥 손으로 이렇게 싹 훔쳐주면 되는거야. 그리고 손은 나중에 씻으면 되지."
'손을 더럽히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와 '항상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교훈은 그 뒤로도 종현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1983년생이 속한 세대와 내 세대에게 다른 어감으로 다가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젊은이들을 인터뷰하며 거리낌 없이 "집안 형편이 좀 어려웠나보죠?"라는 질문을 던기곤 했는데, 이는 혹시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습니까?" 정도로 무례한 질문이었던 셈이다.
대중은 이제 드라마 속 재벌 2세들의 재력을 그의 여러가지 매력 중 하나(사실상 가장 큰 매력)로 받아들인다. 재력은 이제 인성과 분리되지 않는 덕성의 한 요소이고, 돈이 많다는 건 잘생겼다거나 유능하다거나 다정하다거나 정직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미덕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돈이 없다는 건 그런 미덕의 부재를, 가난은 곧잘 말해 악덕을 의미했다. "집안 형편이 좀 어려웠나보죠?" 라는 질문은 이제 "어릴 때 거짓말쟁이 였나보죠?" 라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 되어 버렸다.
경희가 딴소리를 했다. "왜 보지도 않고 저질이래? 자기들이 정신대 끌려갔다 왔나. 아니면 에반게리온 그린 사람들이 정신대 운영했나. 나는 일본에 가본적도 없고 일본사람을 만난적도 없어.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덮어놓고 미워해야해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왜 앞에 있는 우리더러는 커서 룸살롱에 갈거라는 둥 자장면이나 배달하며 인생을 보낼거라는 둥 험담을 해요? 내가 좋아서 좋아하는대로 입고,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데 왜 뭐라고 해."
1학년을 마친 뒤 입대했다. 군대가 고등학교 보다는 더 나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는 시스템이 온몸으로 "너희들은 뻔한 놈들이야."라고 주장했지만, 군대에서는 "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알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뻔하게 있다 가자."라고 말하는 차이가 있었다고나 할까.
"으레 팀별과제를 하면 착취하는 사람과 착취당하는 사람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학기말이 되면 험악한 관계가 되기 마련이죠. 그런데 저랑 후배는 기본적으로 둘 다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후배는 헌신적으로 제몫을 해냈고, 저도 어머니한테 배운 '마토메(마무리) 정신'을 발휘해서 저희 작품을 더 돋보이게 했고요. 다른 애들이 저희더러 농반진반으로 '우리 과에서 가장 생산적인 커플'이라고 말했어요. 저희는 성격도 잘 맞는 편이었어요. 걔는 내성적이고 나긋나긋하고, 저는 이죽거리기 좋아하고 겉보기에는 사교적이고."
"여러분이 일본 회사에서 하게 될 말은 전부 프로그래밍 언어입니다. 프로그래밍을 잘하면 일본어 회화도 잘하게 된다는 뜻이죠."
"뮤지컬에는 '아이-앰-송'이라는 노래와 '아이-원트-송'이라는 노래가 있어.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게 '아이-엠-송'이고, '나는 이러저러한 걸 원한다.' 이러저러한 걸 하겠다'고 노래부르는 게 '아이-원트-송'이야. 유명한 뮤지컬 노래는 대부분 그 두 가지 중 하나야. 회사에서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일을 하다가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연습실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몰라.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지."
"기자님이야 그런 일을 겪으시지 않을테지만......그래도 알아둬서 나쁠건 없는 요령이 있어요. 회사 소유의 통장이 있거든요. 거기에 압류를 걸어버리면 됩니다. 사장 주민등록번호를 먼저 알아놔야해요. 그런 다음에 근처 노동청에 가서 체불금품확인원이라는 서류를 받고, 그렇게 회사계좌에 압류를 걸면 정말 하루도 안되서 사장한테 전화가 바로 와요. 보통 '내일 바로 월급 줄테니 일단 압류 좀 풀어주라' 이런식으로 통사정을 해오는데 마음 독하게 먹고, '제 통장에 찍히는 거 보고 풀어드리겠습니다."
"고용지원센터 민원 넣으러 갔다가, 상담사분이 '이렇게 하면 게임 끝이다. 너희 사장이 울면서 달려올거다!'라며 가르쳐 주더라고요.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전수해 줬죠."
"제가 악보를 보지 못한다는게, 거라지밴드에서는 일반 악보모드로 작곡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쉬운 방법으로도 작곡이 가능하거든요. '연주시간 막대'라고해서 음의 높이나 길이를 굉장히 직관적으로 와닿게 그래프로 표현하는 모드도 있고, 가상피아노 건반이나 기타줄을 화면 한쪽에 놓고 누르거나 튕기면서 곡을 만들수도 있고, 실제로 목소리나 진짜 악기를 녹음해서 그걸 쓸 수도 있어요. 드럼 리듬이나 베이스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데, 제법 그럴싸합니다. 가지고 노는 재미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날개를 주세요>
<플라이 투더 문>
2023.3.2.목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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