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성공한 자의 교만(잘못된 문제정의)

햇살처럼-이명우 2007. 3. 12. 23:06

1869년 수에즈운하를 성공리에 건설해 세계적 영웅이 된 프랑스 엔지니어

 

페르디낭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는 1881년 다시 파나마운하 건설에

 

도전했다.

 

  그러나 파나마는 열대 우림지역이어서 건설이 시작되자마자 황열병(yellow fever)과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들 질병으로부터 건설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목표의식이 생긴 레셉스는 '개미퇴치'를 문제정의로 내세웠다. 개미가 침대에 기어오르는

 

것을 막기위해 침대다리를 물그릇 속에 담가 놓는 조치도 취했다. 그러나 질병은 더욱

 

맹위를 떨쳐 8년 동안 2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재정파탄까지 겹쳐 레셉스는 물러났다.

 

뒤늦게 알려진 이 질병의 원인은 개미가 아니라 모기였으므로 침대 다리 밑 물그릇은

 

모기의 번식만 도운 셈이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굴착지역의 평균높이가 해발 15m 였지만, 파나마의 경우 그것은

 

150m나 되었다. 수에즈 지역은 건조한 사막형 기후였지만, 파나마는 강우량이

 

3천 밀리미터나 되는 열대우림지역이었다. 그래서 1879년에 이미 프랑스 엔지니어

 

브뤼슬리(Lepinay de Brusly)는 파나마운하를 만들려면 차그레스(Chagres)강을

 

댐(Dam)으로 막아(해발 26m 높이로) 인공호수를 만들고, 이 호수를(37km 정도)

 

수로로 이용하면서 바다에 이르는 양측에 3단계의 갑문(Locks)식 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레셉스는 과거 그가 성공한 방식(수에즈운하 건설),

 

즉, 해면과 같은 높이로의 운하건설을 밀고 나갔다.

 

  9년동안 굴착했으나 운하완공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고,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건설인원이 무수히 죽었으며, 결국 1889년 파나마 운하 건설은 실패로 끝났다.

 

 

  10년 후, 1904년 미국의 스티븐스(John F.stevens)는 브뤼슬리가 제안했던 갑문식

 

아이디어를 체택했고, 1913년에 파나마 운하를 완공할 수 있었다.

 

 

 

- 윤석철교수의 경영학 특강 : 경영.경제.인생 강좌45편(윤석철,위즈덤하우스,2005)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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