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449. 개미 5,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10

햇살처럼-이명우 2015. 2. 12. 08:13

449. 개미 5,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10

 

<냄새도 소리나 빛처럼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어>

 

적을 죽이는 것은 적에게 자기를 이해시키는 가장 복잡하고 가장 피곤한 수단이다.>

 

<수면을 통제하는 법>

우리는 한 평생 살면서 25년을 잠으로 보낸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면의 양과 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진정한 심수(深睡), 즉 우리의 피로를 풀어주고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깊은 잠을 자는데 필요한 시간은 하룻 밤에 한시간 밖에 되지 않느다. 그 깊은 잠은 15분 짜리 작은 구성단위로 나뉘어져 한 시간 반 간격으로 노래의 후렴처럼 되풀이 된다.
  간혹 어떤이들은 열 시간을 내리 자고서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은 채로 깨어난다. 그와 반대로, 자리에 눕자마자 잠에 떨어지는 방법을 알게되면, 하루에 한 시간만 자면서도, 그 시간을 온전한 원기회복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식으로 수면을 통제할 수 있을까?

  먼저 자기의 수면 사이클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를들어, 저녁 무렵에 나타나는 갑작스런 노곤함이 한 시간 반 간격으로 다시 찾아온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그 시간을 분 단위까지 기록하면 된다. 만일 저녁 6시36분에 노곤함을 느꼈다면, 다음의 피로감이 찾아오는 시간은 아마도 밤 8시 6분, 9시 36분, 11시 6분 등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시각에 심수열차가 지나갈 것이므로 때를 놓치지 말고 열차에 올라타야 한다. 그 순간에 맞추어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명종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세 시간 후에 깨어나는 버릇을 들이면, 우리의 뇌는 차츰차츰 수면의 단계를 압축해서 중요한 부분만을 유지하는 것에 길들여 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주 적게 자고도 피로를 완전히 풀고 개운한 몸으로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언젠가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면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치게 될 날이 올 것이다.<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3권>

 

<나무들은 사람이 정중하게 도움을 청하면 그 사람을 지켜준다.>

 

<장거리 경주> 

그레이 하운드와 사람이 장거리 경주를 하면 언제나 개가 먼저 들어온다. 몸무게에 비례해서 생각해보면 그레이 하운드의 근력은 사람보다 나을게 없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그레이 하운드와 사람이 똑같은 속도로 달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경주에서 이기는 쪽은 언제나 그레이 하운드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은 달리면서 줄곧 결승선이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린다. 그는 도달해야 할 목표를 염두에 두고 달린다. 그에 반해 그레이 하운드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달린다.

  목표를 가늠하고, 또 목표가 얼마나 남았느냐에 따라 의욕이 부침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한다. 장거리 경주에서는 도달해야 할 목표를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해야한다. 자꾸자꾸 나아가면서 그때그때에 맞게 행로를 수정하면 된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에 도달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표의 초과달성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식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3권> 

 

<연어의 용기> 
연어들은 나면서부터 자기들이 멀리 물길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태어난 하천을 떠나 바다로 내려간다. 바다에 다다르면, 따뜻한 민물에 살던 그들은 차가운 짠물을 견디기 위해 호흡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영양가 높은 먹이를 많이 먹으면서 살을 찌우고 힘을 비축한다. 그러다가, 연어들은 마치 어떤 신비로운 부름에 응하기라도 하듯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바다를 두루 돌아다니고 나서도 모천(母川)으로 통하는 강의 어귀를 다시 찾아낸다.

  그들은 바다속에서 어떻게 돌아가는 길을 찾는걸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대단히 민감한 후각을 이용하여 모천으로부터 흘러온 분자를 바닷물에서 찾아내는 것이리라. 아니면,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서 방향을 알아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가정은 개연성이 적어 보인다. 캐나다에서 강물이 너무 오염되면 연어들이 물길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연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물줄기를 다시 찾았다고 판단하면, 그것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제 그들의 앞길에는 혹독한 시련이 가로 놓여 있다. 몇 주 동안, 그들은 반대방향으로 흐르는 거센 물살에 맞서 싸워야 하고, 폭포를 마주하면, 뛰어올라야 하며(연어는 3m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 곤들매기나 수달, 곰, 낚시꾼 같은 적들의 공격에 저항하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연어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따금 그들이 떠나온 뒤에 새로 댐이 건설되어 그들의 물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연어들은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사는 도중에 죽는다. 끝까지 살아남아 마침내 모천에 다다른 연어들은 그 하천을 사랑의 호수로 바꿔 놓는다. 그들은 여위고 지친 몸으로 산란처를 만들고 알을 낳는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알들을 지키는데 바친다. 그런 다음, 그 알들에서 기나긴 모험을 다시 시작을 새끼 연어들이 나오면 어미들은 죽어버린다.

  드문 일이지만, 어떤 연어들은 힘을 다 쏟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바다로 살아 돌아가 또 한 차례의 험난한 여행을 하기도 한다. <상,절,백 3권>

 

잔인성은 인간의 한 특성입니다. 인간은 아무 까닭없이, 단지 남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서 남에게 고통을 주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 아쉬교수의 실험>

  1961년 미국의 아쉬라는 교수는 어떤 실험을 위해 자기 방에 일곱사람을 모았다. 그는 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기가 그들을 상대로 지각에 관한 실험을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일곱 명 중에서 진짜 실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고, 나머지 여섯 명은 돈을 받고 교수를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그 보조자들은 진짜 피실험자가 실수를 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이었다.

  그 실험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이랬다. 피실험자가 마주보고 있는 벽에 직선 두 개를 그려 놓는다. 직선 하나는 길이가 25cm, 다른 하나는 30cm이다. 두 직선은 나란하기 때문에 30cm가 더 길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아쉬교수는 방에 모인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어느 직선이 더 긴가하고 묻는다. 여섯 명의 보조자들은 한결같이 25cm짜리의 직선이 더 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진짜 피실험자에게 묻는다.

  그런식으로 실험을 한 결과, 피실험자들은 25cm짜리의 직선이 더 길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60%에 달하였다. 또 30cm짜리가 더 길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여섯 보조자들이 비웃으며 놀려대면, 그 중 30%는 다수의 기세에 눌려 처음의 응답을 번복하였다.

  아쉬 교수는 대학생과 교수 100여명을 상대로 같은 실험을 했다. 남의 말을 쉽게 믿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아본 거였다. 그 결과는 그들 중 90%가 25cm짜리 직선이 더 길다고 응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cm짜리 직선이 더 길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바꿀 기회를 주느라고 아쉬 교수가 같은 질문을 여러차례 되풀이하면, 많은 사람들은 뻔한 걸 왜 자꾸 묻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기색을 보이며 자기 응답을 고수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피실험자들에게 그 실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면서 다른 여섯명은 교수와 미리짜고 실험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피실험자들에게 알려주어도, 그들 중 10%는 여전히 25cm 짜리 직선이 더 길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거였다. 또 어쩔 수 없이 자기들의 실수를 받아들인 사람들고 남들이 다 그러기에 자기도 따라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시력이나 관찰각도를 문제삼으면서 갖가지 변명을 늘어놓더라는 것이다.(상,절,백 3권)

 

2012.0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