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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 시간과 자유의지, 앙리 베르그송, 삼성출판사, 1989

햇살처럼-이명우 2015. 7. 29. 20:07

470. 시간과 자유의지, 앙리 베르그송, 삼성출판사, 1989

베르그송의 사물인식 방법 두 가지
- 사물의 주위를 맴도는 것, 분석
- 사물의 내부에 들어가는 것, 직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에서 출발해서, 인간을 사유하는 실체로 보았다. 그의 철학은 사유와 존재를 동일한 가치로 보게되어, "나는 신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신은 있다."고 하는 실체 증명의 방향으로 까지 나아갔다.

옛날 알레아의 제논, 운동에 관한 모순
아킬레스와 거북이

신체적 기억
회상기억

생물은 그 부분의 부분이 어디까지나 이질적인 것인데, 결정에는 부분의 이질성도 없고, 기능의 다양성도 없다. 구조와 운동의 동질적인 결정에 대하여, 구조,기능 어느 것이나 이질적인 다양성을 가짐으로써 생물은 개체인 것이다. 처음부터 완젆나 개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개체와 하려는 경향과 새로운 개체를 재상하려는 능력을 생물은 갖고 있다.

베르그송은 생명이 물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특성을 드러냈다. 내면적으로 체험되는 사실을 표현이라는 직관에 의하여 19세기를 지배했던 실증주의, 칸트 이후의 관념론에 대항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유럽사상의 새 방향을 열어 놓았다. 물질보다도 생명이나 운동 같은 더 구체적인 현실 파악을 위해서는 과학적 합리론늬 좁은 틈을 돌파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19세기의 편견에서 헤어나는 공을 거두었다. 철학는 칸트같이 인식론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베르그송은 이점에서 멘 드 비랑의 사상을 계승하여 철학과 심리학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데 일치하고 있다. 그는 또 생명의 철학을 형성하면서도 단순히 생물학적 생명의 철학도 아니요, 독일식 문학적 인간의 생의 철학도 아닌 그 둘을 통일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도 베르그송의 철학은 프랑스 철학의 한 고전(古典)이 되었고, 새로운 형이상학의 원천이 되었다.

"사랑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호흡을 빠르게 하며 얼굴을 붉게 하는 것" - 찰스 다윈 -

"행위란, 일단 행하면 곧 행해진 것이 된다." 또한, "행위는 행해지기 이전에는 아직 행위가 아니었다" 라고 대답하는 반대론자들의 논의도 알게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유의 문제는 그러한 논의에서도 손대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납득이 가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행위 그 자체의 어떤 뉘앙스나 질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 행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또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던 것 속에서 찾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천문학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이란 수(數)이며, 그 수의 모든 단위의 성질에 관해서 계산속에서 특별히 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가설이 모든 조작계열에 해당되고, 공간에서의 위치의 연속적인 관계도 그와 같이 보존될 수만 있다면, 그 단위들을 원하는 만큼 작게 가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견하고자 하는 천문학적 현상에 상상을 통해 참관하게 될 것이고, 그 현상이 정확히 공간의 어떤 점에서 발생하는가 또한 얼마만한 단위의 시간 후에 발생하는 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 후 사건을 다시 미래로 밀어 보내기 위해서는 여러 단위들에게 각자의 심적성질을 반환해 주기만 하면 족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았음에도 예견했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에 훨씬 가까운 다른 종류의 사전형성이 있다. 왜냐하면 직접적 의식이 우리에게 그것의 이미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여러 계속적인 의식 상태를 통과하며, 뒤따라오는 의식상태가 선행한 것 속에 조금도 포함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때 다소나마 막연하게 후행하는 의식상태의 관념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관념의 실현이 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니고 다만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관념과 행위사이에는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중간물이 놓여지게 된 것이며, 그 모든 중간물이 우리에게 이른바 노력의 감정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념에서 노력의로 노력에서 행위로의 진행은 대단히 연속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관념이나 노력이 어디에서 끝나며 행위는 또 어디에서 시작하는가는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여기에서도 역시 미래가 현재에서 사전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전형성은 너무나 불안전하다는 것을 덧붙여 두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행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관념을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해도 아직 실현된 것은 아니며, 그것을 실현하기에 필요한 노력을 대충 그려볼 수 있는 경우에도 아직은 그것을 중단할 시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2012. 5. 27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