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 삶의 예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동서문화사, 2012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는 우선 그 사람이 그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의존한다. 또 그 사람이 가진 두뇌의 차이에 따라 그 세계를 규정짓는 성격이 달라진다. 두뇌에 따라서 세계는 빈약하고 무미건조하거나 평범한 것이 되기도 하고, 또는 풍부하고 흥미 있으며 의미 심장한 것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남이 체험한 것을 보고 그 체험을 부러워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실은 오히려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일을 해 나가는 동안에 그 체험에 대하여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이해력을 칭찬하고 부러워해야 한다. 사건이 동일할지라도 정밀한 두뇌의 소유자에게는 흥미있게 표현되지만, 천박하고 평범흔 두뇌의 소유자에게는 단지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한 장면에 불과하다. 이것을 확실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을 괴테나 바이런의 많은 시에서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분명히 현실의 여러가지 일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어리석은 독자는 시인의 일상적인 일에거 이처럼 위대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뛰어난 공상력에 대하여 부러워하는 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이토록 인기를 얻게 된 것을 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이유에서 성격이 다혈질인 사람은 다만 갈등만을 보고, 점액질은 사람은 무의미만을, 신경질적인 사람은 비극적인 광경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는 우리의 생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곳곳에 있을 듯 하면서도 찾아보면 드물다. 가난과 투쟁을 거쳐온 많은 사람들은 결국 이 투쟁 속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내면이 공허하고 의식이 둔해지고 정신이 빈약해져서 그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사교장으로 몰려가고 사교계는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서는 저마다 오락과 대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관능적인 향락이나 여러가지 위안을 얻는 가운데 결국은 방탕으로 흘러 버린다. ~ 내적인 빈곤은 결국 외적인 빈곤을 초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인간의 귀중한 3가지 보물은 외적인 보물, 마음의 보물, 육체의 보물
나의 세가지 부류
1. 인간의 자아, 즉 가장 넓은 의미의 인격이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는 그 사람의 건강, 역량, 미모, 기질, 도덕적인 성격, 교양이 포함된다.
2.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 일반적인 의미의 재화와 소유물
3. 인간의 표상(表象 의식내용) 하는 것, 즉 자기가 남의 표상 속에 나타나는 것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적은 고통과 권태라는 두 가지다. 그리고 이들 둘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적당히 멀어지게 되면 그 만큼 다른 하나가 가까이 다가온다.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우리의 일생은 거의 이 양자의 중간에서 때로는 강하게 진동하고, 때로는 약하게 진동하고 있는 격이다. 이것은 양자의 중복된 상관관계, 즉 외적 또는 객관적인 상반관계와 내적 또는 주관적인 상반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데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외적으로는 가난과 결핍이 고통을 일으키고, 반대로 안전과 과잉은 권태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층민이 가난, 즉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부유층은 반대로 권태로움에 빠져드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문명의 최저 단계를 보여준 유목생활은 가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여행은 권태에서 비롯되었다.
정신력이 풍부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고통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마음이 안정되기를 힘쓴다. 그러므로 조용하고 호젓하며 되도록 방해받지 않는 생활을 위하여 남들과 안면이나 익히고 은퇴하는 편을 택할 것이며,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고독까지 원할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자아가 풍부할수록 외부세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더 적어도 된다. 그리고 타인은 그에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이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사교를 싫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면이 풍부한 사람은 외부로부터 소극적인 선물, 즉 자유로운 시간 이외의 것은 원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시간은 정신적인 여러가지 능력을 만들고, 성장시켜 자기의 내면적인 보물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일생을 통하여 날마다 매 순간마다 참으로 그 순간들이 자신의 것이 되기만을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는 남들의 견해가 먼저 고려된다. 좀 더 정확하게 검토해보면, 우리가 일찍이 느낀 비애와 염려의 거의 절반은 남들의 견해에 대한 걱정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 생각은 모두 병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때때로 크게 상처를 입은 자기 감정과 허영심과 자부심, 그리고 호화로움과 허세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고려와 허영심이 없다면 오늘 날의 사치는 거의 1/10로 줄어든 것이다. 모든 과시와 체면 및 영예는 그 종류와 범위도 다양하지만, 모드가 그 고려와 허영심에서 생긴다.
- 명예는 외적인 양심이며, 양심은 내적인 명예다.
- 명예는 객관적으로는 우리의 가치에 대한 남들의 견해며, 주관적으로는 그 견해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다!
명예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견해를 드러내는 데 있다. 그 증거로는 비난이 철회될 수도 있고, 또 필요하다면 사과를 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하면 비난을 하지 않는 것과 같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은 발길로 차이기까지 했지만 끈기있게 참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에게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내가 노새에게 채였다고 해서 고발할 수는 없지않나?"
"그렇지만 그 사나이는 욕설을 퍼부어 창피를 주지 않았습니까?"
"천만에, 그가 한 말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네."
-현자는 모욕을 개의치 않는다. -세네카-
심한 불행에 빠지지 않으려면 엄청난 행복을 바라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떤 건물을 세우려고 일을 하는 일꾼들이 전체 계획은 알지도 못하고 또 언제나 의식하고 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의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 나가면서 인생의 전모와 그 성격을 모르며, 언제나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설계도를 한 눈에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를 굳세게 분발시키며, 활기를 불어넣어 곁길로 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현재만이 유일한 진실이며 현실이다. 현재는 사실로 가득찬 '시간'이며, 우리의 존재는 현재 속에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현재에 대하여 언제나 쾌활한 마음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마땅히 견딜만하고 직접적으로 느끼는 불쾌나 고통에서 벗어난 '시간'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여 이를 즐겨야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모처럼의 평안한 현재를 우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마땅히 환영해야 할 현재를 푸대접하거나 후회나 걱정으로 인해 따분하게 만드는 것은 못난 짓이며, 걱정이나 후회화는 시간은 얼마든지 짧아도 무방하다. 즉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므로, 지난 일로 내버려두라<호머(일리아드)>
또,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마음에 달려 있나니.
그러나 현재에 관해서는 '하루를 일생으로 간주하여' 그 유일한 현실인 '시간'을 되도록 즐겁게 보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각각의 하루가 일생 동안 쌓아가는 생애의 일부임을 잊어버린다. 오히려 여러 개체가 일반 개념 아래에 포섭되듯이, 모든 나날이 한 생애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날도, 병에 걸렸거나, 우수에 사로잡혔을 때도, 잃어버린 낙원이나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듯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현재를 좀 더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현재를 즐기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이 가진 아름다운 나날을 느끼지 못하고 낭비해 버린다. 그리고 달갑지 않은 나날이 닥쳐왔을 때에야 겨우 전과 같은 날이 돌아와 줬으면 하고 바란다.
우리는 명랑하고 즐거운 시간을 찌푸린 얼굴로 즐기지도 않고 헛되이 보내다가 나중에 우울한 시간이 찾아오면 쓸모없는 추억에 잠겨 사라진 시간을 되돌아보며 한탄하게 된다. 이런 일을 하는 대신 우리는 각자 무사한 현재가, 아무리 일상적인 평범한 것이라도 결코 냉대하여 무심히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하며, 결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이를 푸대접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 현재는 시시각각 과거 속으로 사라져 그 속에서 언제나 불멸의 후광을 발산한다. 그것도 대개는 일이 여의치 않을 때 기억의 베일이 걷히면서, 부질없이 추억의 대상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은 활동범위를 제한하는데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시야나 활동무대 및 접촉범위가 좁을수록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넓을수록 우리는 더욱 괴로워하고 번거로워진다. 역시 그것들은 걱정과 욕구와 불안을 증가시키거나 확대하기 때문이다. 장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그들의 얼굴이 부드럽고 쾌활에 가까운 침착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고독하며 비참한 인간은 자신의 초라함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자기자신의 위대성을 그대로 느낀다.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의 수준에서 느끼는 것이다.
일반 사회를 러시아의 단음악기 호른에 비교할 수 있다. 이 음악에서 호른은 단지 한 가지 음을 낼 뿐이며, 모든 호른을 정확하게 결합시켜야만 화음이 이루어지고 비로소 음악이 연주된다.
일반 사람들의 감각기관과 정신은 이와 같이 단음의 호른처럼 단조롭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어떤 다른 사상을 생각해낼 만한 능력이 없다. 따라서 언제나 한 가지 사상만 갖게 되고 같은 사상을 갖게 된다.
밤에 등불을 켜도 이해력은 대낮처럼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으므로 밤 시간은 불쾌한 사건을 성찰하기에는 특히 적합하지 않으며, 아침이 제일 적합한 시간이다.
아침이 정신노동은 물론 육체노동에도 적합하다. 아침은 그 날의 청년과 같으며, 쾌활하고 신선하며 경쾌하여 자기 자신을 힘차게 느껴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우리는 이아침시간을 늦잠으로 단축시켜서는 안된다. 지저분한 일이나 잡담으로 낭비해서도 안될 뿐 아니라 아침을 생명의 정수로 신성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편, 밤은 하루의 노년기이므로 저녁에는 머리가 멍청해지고 입을 잘못놀려 경솔해지기 쉽다. 하루하루가 짤막한 생애인 것이다. 날마다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그 날의 탄생이며, 신선한 아침마다 짧은 청년시기를 거켜 잠자리에 들어 잠들면 그날은 죽어버린다.
그리고 대체로 건강, 수면, 영양, 온도, 날씨, 그 밖의 외부적인 일들이 우리 기분에 큰 영향을 주고, 이 기분의 우리가 가진 사상에 커다란 작용을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에 대한 우리가 지닌 능력도 '때'와 '장소'에 크게 지배릘 받는다.
즐거운 기분은 꽉 잡아둘 일이다. 그것은 자주 우리를 찾아들지 않으니~ 괴테<일반적인 고백>
뇌에는 그 휴식에 필요한 만큼 충분한 수면을 취하게 하는 것이 좋다. 수면이 육체에 미치는 작용은 시계에 태엽을 감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의 몸무게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탱하고 있지만 다른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그 무게를 느끼는 것처럼, 자기의 결점이나 부덕은 의식하지 못하고 남의 것은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대신 모든 사람들은 타인 속에 하나의 거울을 갖고 있어 그 거울 속에 자기의 온갖 부덕과 결함, 무례 및 고약한 성질 등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누구나 거울을 향해 짖어대는 개와 같은 짓을 곧잘 한다. 개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이 다른 개인줄 알고 짖어대는 것이다.
우리는 남을 본보기로 삼고 행동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나와 남은 환경과 처지와 사정이 같지 않으며 성격도 달라 행동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은 얼굴을 학 있어도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납득이 갈 때까지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나서 자기 성격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적인 방면에서도 결코 독창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기 행위와 자기 자신이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다.
남의 견해를 반박하지 마라. 그가 믿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완전히 그에게 납득시키려고 하면, 므두셀라(구약에 나오는 인물로 969세 까지 생존했음) 만큼 오래 살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남하고 이야기를 할 때 아무리 호의라도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서는 안된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는 쉽지만, 잘못을 바로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치에 닾지 않더라도 제3자인 우리는 개입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들이 서투른 연극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세상에 진리나 교훈을 전하려는 사람이 그 임무를 무난하게 마쳤다면 그것은 하나의 요행이며, 오해와 푸대접과 반항, 그리고 학대를 받게 마련이다.
아라비아의 격언
"그대의 적에게 알려서는 안되는 것은 그대의 친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마라."
"내가 자신의 비밀을 입밖에 내지 않으면 비밀은 나의 노예가 되지만, 입밖에 내면 나의 주인이 된다."
"침묵의 나무에는 평화의 열매가 열린다."
세상에는 세 가지 지배적인 힘이 있다고 옛사람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지혜와 힘과 행운이다. 인생은 배의 항로와 비교할 수 있다. 운명이 바람의 역할을 하며 우리를 재빨리 멀리 운반해 가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서 되돌려보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나 분투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이 때 이 노력이나 분투가 노 역할을 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오랫 동안 애쓴 나머지 얼마간 전진했다 생각하면,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우리가 지금까지 전진해온 거리만큼 후퇴시킨다. 그러나 순풍이 불어올 경우에는 우리를 계속 전진하게 하므로 우리는 노를 저어갈 필요가 없다. 행운은 이와같은 힘을 스페인이 격언은 매우 훌륭히 표현하고 있다.
'그대의 자식에게 행운을 주어 바다에 내던져라.'
그 나이에 해당된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 나이에 해당된 불행을 맛보게 된다.
젊은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이란 하나의 끝없이 긴 미래로 보이며, 노인이 입장에서 보면 극히 짧은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려면 장수한 노인이 되어야 한다.
청년시절에는 직관이 중심이 되고, 노년기에는 사색이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청년시절에는 시를 쓰는데 적합한 시기요, 노년시절은 철학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이다. 실천에 있어서도 청년시절에는 직관한 것과 그 인상에 의해 결심을 하지만, 노년에는 주로 사색에 의해 결심을 한다.
2013. 4. 6 토요일, 비
세상을 보는 방법
254. 기회에 따라 맞춰 살아라.
인생을 살다보면 상황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오늘 내버린 오물을 내일 마셔야 될지도 모른다. 현명한 사람은 사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배의 키와 돛을 바꾸어 나아가지만 자신의 목적시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259. 좋은 술은 맛만 보게하라.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한 가지 꼭 지켜야 하는게 있다. 상대의 욕구를 자극해 언제까지나 채워주기 않는 것이다. 쾌락에 싫증난 사람보다 갈망에 몸을 뒤트는 사람에게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다리게 할수록 상대의 기쁨도 더 커지는 법이다.
265. 좋은 역할은 스스로, 미움받는 역할은 남에게
266. 사람들은 난해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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