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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세계사, 2008

햇살처럼-이명우 2016. 9. 26. 17:59

516.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세계사, 2008

박완서 소설전집 16

젊은 구글러, 젊은 멘토 김태원 강사의 강의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시골과 도시의 생활에 대한 경험과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다.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며 박완서 선생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을 보면 '애호박의 요염한 자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말을 자신은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궁금하여 책을 잡았는데 진다가 잘 나간다. 어린 시절 환경과 사람, 그리고 사상에 대한 균형잡힌 관점이 돋보인다.

차례

1. 야성의 시기

2. 아득한 서울

3. 문 밖에서

4. 동무없는 아이

5. 괴불마당 집

6. 할아버지와 할머니

7. 오빠와 엄마

8. 고향의 봄

9. 패대기 쳐진 문패

10. 암중모색

11. 그 전날 밤의 평화

12. 찬란한 예감


내 고향은 개성에서 남서쪽으로 20리 가량 떨어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 사람들은 개성을 송도라 불렀다.


옆구리에 텃밭을 낀 집들이 산 기슭에 안겨있었고, 넓은 벌을 풍성한 치맛자락처럼 거느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 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 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보았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삼시 밥 외의 군것질거리와 소일거리를 스스로 산과 들에서 구했다. 삘기, 찔레순, 산딸기, 칡뿌리, 메뿌리, 싱아, 밤, 도토리가 지천이었고, 궁금한 입맛 뿐 아니라 어른을 기쁘게 하는 일거리도 많았다.


"너 할미가 좋으냐? 에미가 좋으냐? 후딱 대답해봐, 요년아. 할미가 좋으면 엄마한테 할미하고 살겠다고 말해. 후딱." 그럴 때 나는 "몰라, 몰라" 하고 우는게 수였다. 어린 나이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궁지였다.


유리창이란 얼마나 신기한가:(......) 나는 온 몸으로 유리창에 달라 붙었다. 얼굴만 얼음장에 눌리듯 사정없이 퍼졌을 뿐 한치도 할머니에게 다가 갈 수 없었다.


아카시아 꽃을 한 송이 먹어보았더니 비릿하고 들척지근 했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이 났다. 무언가로 입가심을 해야 들뜬 비위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 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그러나 만약에 그 때 엄마가 내 도벽을 알아내어 유난히 민감한 내 수치심이 보호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감하다는 건 깨어지기 쉽다는 뜻도 된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가 되었을 것이다.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 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텃밭에는 먹을게 한창일 때였다. 당장 따서 쪄낸 옥수수의 감미를 무엇에 비길까. 더위가 퍼지기 건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 하고 비교해야 할 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방학이 가까워오면 할아버지의 침에 절어 시척지근한 냄새가 밴 베수건에 싸둔 곶감이나 밤 따위가 다 절절히 그리워지곤 했다. 그건 먹고 싶다는 것하고는 달랐다. 핏빛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건들대는 수수이삭을 보고 싶은 것과 같은 감미롭고도 쓸쓸한 정서였다.


식량배급은 줄고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콩깻묵까지 섞여나와 엄마의 시골 나들이가 잦아졌다. 쌀을 얻으러 가는 것이었다. 시골집은 숙부가 면서기여서 일정량의 공출만 내면 억울하게 수탈을 당하는 일을 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식량 수탈에는 대개 면서기들이 앞장서야 했으니 숙부는 그 만큼 원성의 대상이었을 듯했다. 오빠가 아무리 자기가 누리는 작은 특권에 고민해 봤댔자였다. 결국은 시골에서 숙부가 누리는 치사한 특권에 빌붙어 굶주림을 면하고 있었다.


딸일수록 맛있는 걸로 입맛을 높여놔야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지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결코 맛있게 만들 수 없다는 엄마의 생각은 '입병 난 며느리는 써도, 눈병 난 며느리는 못쓴다.' 는 당시의 파격이었다. 


학내 혼란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가 내 성장기의 매듭처럼 회상되는 것은, 어떤 의식을 가지고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기 시작한 시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올케는 오빠가 하는 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한편 오빠가 잊고 지내는 가장으로써의 의무를 일깨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밥도 안굶어보고 쌀 중한 걸 알수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으로 밥 빌어본 경험도 없이 어떻게 노동자를 위할 줄 알겠느냐는 소리도 힘 안들이고 툭툭 잘했다. 언니의 화법은 특이했다. 옆에서 듣는 사람 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면서도 오빠의 자존심을 긁는 신랄함이 없이 다만 구수했다.


자식의 안전을 위해 법에서 금하는 불온한 사상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식이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이니만치 뭔가 위대한 일이라고 믿고 싶은, 가장 우리 엄마다운 이중성이었을까?


꿈이야 말로 장미와 라일락과 모란을 피게하는 5월의 햇빛보다 더 찬란했다.


텃밭이 거기 있음으로써 그건 귀가가 아니라 귀향이 될 터였다.


애국단체는 왜 그렇게 많이 생겨났던지, 그들이 내건 구호와 성명으로 거리거리의 벽마다 도배를 하다시피 했는데 하나같이 공산당의 만행을 규탄하고 적색분자를 남김없이 색출해 이참에 씨를 말려야 한다는 격렬하고도 호전적인 것들이었다. 한 번은 그런 벽보 가운데 "자유주의 만세"라고만 쓴 초라한 벽보를 보고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한참 심신이 황혜할 때였는데 그걸보자 무릎이 스스로 꺾일만큼 힘이 빠졌다. 이런 수모와 단련을 받으면서도  북쪽에서 설사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준대도 바꾸고 싶지 않은건 저것 때문이었을까? 수모와 단련 끝에 감옥살이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이 땅을 택할만큼 이 땅에 더 있는 자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래, 참 국가원수를 광신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지. 나는 쓸쓸하게 자조 했지만, 한편 그 정도의 자유도 태산만한 희망이었다.


이마고(imago) : 무의식 속에 있는 보편적 원형. 융은 이를 집단무의식과 연결하여 원형심상이라고 정의했다. 이마고는 보편적 원형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있는 고정관념으로 작용하며 저절로 생기는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반면 라캉은 이마고를 자기를 인식하는 최초의 이미지로 분류하면서 융과 달리 부정적으로 이해했다. 그는 타자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콤플렉스가 이마고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이 이마고가 남을 대하는 원리이자 환상이 된다는 것이다.


2013. 4. 14 일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