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역사의 연구2, 토인비, 삼성출판사, 1989
6편 세계국가
1. 목적이냐, 수단이냐
2. 불사의 신기루
3. 누구를 위하여
7편 세계교회
1. 세계교회와 문명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
2. 교회의 생애에 있어서의 문명의 역할
3. 지상전투의 도전
8편 영웅시대
1. 비극의 코스
9편 문명의 공간적 접촉
1. 연구영역의 확장
2. 동시대 문명의 만남의 개관
3. 동시대 문명의 만남과 드라마
4. 동시대 문명의 만남의 결과
10편 문명의 시간적 접촉
1. 르네상스 개관
11편 역사에 있어서의 법칙과 자유
1. 문제
2. '자연의 법칙'에 대한 인간생활의 순종
3. 자연의 법칙에 대한 인간성의 저항
4. 신의 법칙
12편 서구문명의 전망
1. 이 물음의 필요성
2. 선험적인 답의 불확실성
3. 여러문명의 역사적 증언
4. 전쟁, 기술, 정부
5. 기술, 계급투쟁, 고용
13편 결어
아우구스투스가 황폐해지고 무질서해지고 피폐해진 세계를 재건하는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그 필요에 응하기 위해 새로운 관리제도를 만들어낸 업적에 필적한 것은, 그보다 150년 일찍 중국 고대세계의 한(漢)의 유방의 사업이었다. 그들의 그 업적이 얼마나 오래 존속하였는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중국의 농부의 사업이 로마의 부유한 옥타비아누스의 사업보다 훨씬 더 훌륭하였다. 아우구스투스의 관리제도는 성립 후 7세기만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는데 반하여, 유방의 관리제도는 일시도 중단되지않고 줄곧 1911년까지 존속하였다.
로마제국의 관리제도의 결함은 낡은 원로원 귀족계급과 새 황제 독재정치와의 갈등의 반영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타협은 그 결함을 겉으로는 얼버무렸지만 근치책(根治策)이 되지 못하였다. 거기에는 엄격히 구별되는 두 계층제와 상호 배타적인 두 계통이 있었는데, 원로원 계열의 관리조직과 비(非)원로원 계열의 관리조직이 각각 다른 길을 가걷고 있었다.이러한 관리조직상의 분열은 기원 후 3세기에 이르러 원로원 계급을 행정상 책임의 일체의 직책으로부터 제거하게 되면서 종말을 고하였다. 그러나 이 때가 되면, 지방도시 자치의 쇠미로 말미암아 관리의 업무량이 크게 늘어나 있어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의 행정관리를 엄청나게 증원하는 조처를 항구적으로 제도화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 증원된 관리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수준은 자연히 저하되었다. 이것과는 대조적인 한조(漢朝)의 관리제도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적인 점이 많다. 한조에서는 처음부터 신분의 여하를 불문하고 재능있는 자에게 관리등용의 문이 열려 있었다. 즉, 한초(漢初)의 질서를 회복한 지 6년 후 기원전 196년에, 황제가 친히 지방당국자에게 칙령을 발포하여 자격시험에 의해 관리 후보자들을 뽑아 수도로 보내면 중앙정부의 관리가 그들의 채용여부를 결정하라고 지시하였다.
미노스 문명 → 미노스 문명 멸망 후의 만족(필리스티아인, 아카이아족) → 시리아 문명 → 이슬람교
→ 헬라스 문명 → 그리스도교
→ 대승불교
인더스 문명 → 인더스문화 멸망 후의 만족(아리아족) → 인도문명 → 대승불교
→ 힌두교
힌두세계와 서구와의 만남은 1498 바스코 다 가마의 캘커타 상륙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사실상 이 두 사회 사이에 일어난 최초의 접촉인 것이다.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의 대서양 연안의 국민은 15세기에 새로운 타입의 항해 범선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세 개의 마스트에 네모난 돛을 단 범선인데, 초기에는 삼각범(三角帆)이 곁들어 있었고, 후기에는 종범(縱帆)이 곁들어 있었다. 이 범선은 몇 달 동안이나 기항(寄港)하지 않고도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인은 이 배를 타고 시험적 항해를 시도하여 1420년경 마데이라(Madeira)군도와 1432년 아조레스(Azores)군도를 발견하고, 이어 1445년에는 베르데 갑(岬 Ape Verde)를 돌아서 대서양상으 아랍의 전초를 포위하고, 1471년에는 적도에 이르고 1487~88년에는 희망봉을 우회하고, 1498년에는 인도 서해안의 캘리컷에 상륙하고, 1511년에는 말래카 해협을 제압하고, 거기서 다시 서태평양으로 돌입하여 1516년에는 광둥(廣東)에, 1542~43년에는 일본연안에 깃발을 휘날리는데 성공했따. 이와같이 포르투갈인은 순식간에 인도양의 '해양왕국'을 아랍인의 수중에서 탈취하였던 것이다.
사멸한 헬라스 문명이, 중세 말기의 북부 및 중부 이탈리아라는 특별한 시기와 특정한 장소의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에 미친 영향을 묘사하는 말로 '르네상스(La renaissanc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저작가 E.J.들레클루즈(Delecluze:1781~1863)인 듯하다.
서구 문명으로 하여금 그리스인의 상속자가 되게 한 것은 그 비판적 지성과 과학연구의 꾸준한 정신인데(......) 로베르 드 소르본(Rodert ofSorbonne)은 '토론의 이(齒)로 씹지 않으면 어떤 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가장 명백한 문제부터 가장 심오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문제를 이렇게 이로 씹는 과정에 올려놓는 경향은, 민첩한 기지와 정밀한 사고를 고무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비판정신과 방법론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발전시켰는데, 이 정신과 태도야말로 서구 문화와 근대과학의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문학의 르네상스 첫 단계 사업은 보통 군주의 의뢰를 받은 일단의 학자들이 선집, 전빕, 보전, 사전 또는 백과사전등을 편찬하는 대사업이다. 그리고 그러한 학문의 협동사업을 후원하는 군주는 대개 부활된 세계 국가의 지배인데, 그 세계국가도 실은 정치면의 르네상스의 산물이다. 이러한 타입의 지배자를 대표하는 5대 인물 - 아수르바니팔(Asshurbanipal), 콘스탄틴 포르피로게니투스(Constantine Porphyrogenitus), 영락제, 강희제 및 건륭제 - 가운데서 뒤의 네 사람은 모두 편찬사업을 후원하였다. 이렇게 이미 '사멸한' 고전문학 가운데서 아직 잔존하고 있는 작품들을 수집하고 편집, 주석하고 출판하는 사업에 있어서 중국 고대사회를 부활시킨 극동사회의 세계국가의 황제들은 그 어떤 경쟁자도 훨씬 앞질렀다.
아수르바니팔이 수메르와 아카드의 고전문학을 소장한 두 점토판(粘土板) 도서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의 것이었는지 잘 알 수 없다. 현대 고고학자는 니네베 유적의 발굴에서 발견된 점토판의 일부로 그 아시리아의 2대 컬렉션의 수집과 산일(散逸)을 알게 되었지만 그 학자다운 왕이 죽은지 아마 16년이 채 안되는 기원전 612년에 그의 가증스런 왕도가 습격을 받고 약탈당하여 두 도서관의 문서가 모두 도시의 폐허 위에 여기저기 흩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 크기를 잘 알 수 없다. 아수르바니팔의 소장 도서는 중국 고대 문명의 고전, 유교 경전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아수르바니팔의 소장이 중국의 것보다 더 많았을지 모르지만, 그의 소장 도서에 적혀진 설형문자의 글자수는 명조 2대(실은 3대이다)의 영락제가 1403~07년에 집성한 컬렉션에 적혀진 한자의 글자 수보다 훨씬 적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이 영락제의 집성 <영락대전> 은 그 목록을 제외하고도 2만2천877권, 1만1천95책에 달하는 방대한 것이었으니까. 여기에 비교해보면, 동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틴 포르피로게니투스의 그리스 문헌의 집성은 - 서구인이 볼 때는 그 방대함에 놀라자빠지겠지만 - 정말 보잘 것 없다.
(......) 과거제도를 부활시킨 622년에서 그것을 폐지한 1905년까지 1283년 동안 과거 응시자들이 고대 중국의 고전 스타일로 작성한 논문의 편수와, 서구세계의 학자들과 학생들이 15세기부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 작성한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산문과 시문의 편수와, 어느쪽이 얼마나 더 많은가는 통계학자에게 내맡기는 수 밖에 없다.
법의 개념이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옮겨지게 되면 일견 상반되는 두 개념으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다. 법을 제정하는 인간의 면을 인간이 실시하는 법의 면보다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법칙'을 전능하신 신의 '법칙'으로 보고, 법을 제정하거나 통치하는 인간의 면을 법의 관념보다 덜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협이상학적 '법칙'을 획일적이고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비인격적 법칙으로 본다.
도전의 원리는 빵을 갈구하는 빈 창자의 도전이건, 신을 갈구하는 굶주린 영혼의 도전이건 대소를 막론하고 똑 같다. 어떤 도전이건 도전은 항상 신이 인간의 혼에 제시하는 선택의 '자유'이다.
'덕(virture)' 이 성장하는 시기에 번창하는 재주는 전쟁술이고, 덕이 안정되어 있는 시기에 번창하는 재주는 학술이며, 덕이 기울어가는 시기에 번창하는 재주는 관능적 예술이다. 프란시스 베이컨<학문의 진보, 1605>
201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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