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민음사, 2012
위대한 게츠비를 읽고, 해설 부분에서 1930년대 미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해 놓은 것을 보고 읽었는데, 아내는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며, 나도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함께 보았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의 미국 농촌의 실상을, 가난한 자들의 좌절과 분노를 잘 보여준 작품. 에덴의 동쪽도 Steinbeck의 작품이구나.
<1권>
"~하지만 가끔은 돼먹지 못한 부자들 때문에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더라도 착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여덟시간이나 열시간, 아니면 열네시간 동안 여기 앉아 있기만 하면 되니 쉬워 보이겠지만, 이 놈의 길이 사람을 먹어 들어오거든. 그러니 뭐라도 해야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수~ " 트럭운전사.
"맞아! 난 늑대처럼 심술궂었지. 하지만 지금은 족제비처럼 교활해. 네가 뭘 사냥할 때는 네가 사냥꾼이고 강한 쪽이지. 아무도 사냥꾼을 이길 수 없어. 하지만 사냥감이 되면 얘기가 달라져. 뭔가가 달라진다고, 이젠 강하지 않아. 사납게 굴 수는 있지만 강하지는 않아."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없어. 고물상한테 우리가 팔아넘긴 쓰라린 심정. 고물상이 그 심정까지 가져갔는데도 우린 여전히 속이 쓰리잖아. 지주한테 떠나라는 소리나 듣는 신세. 그게 바로 우리야."
"감옥에 있을 때 어땠는지 아세요? 거기서는 자기가 언제 나갈지 생각하면 안돼요. 그랬다가는 미쳐버리니까. 그냥 그날 하루하루만 생각해야 돼요. 아니면 토요일에 열리는 야구시합을 생각하거나. 감옥에 들어온 지 오래된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지만, 새로 들어온 젊은 해들은 결국 감방 문에 머리를 쿵쿵 찧곤 해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머니도 감옥의 고참들처럼 한 번 해보시지 그래요? 그냥 그날 하루하루만 생각하는 거예요."
말들이 숨 쉬는 소리가 들려오는 헛간에는 따스함이 있고, 말들은 짚자리 위를 서성이며 건초를 먹는다. 말들의 귀와 눈은 살아있다. 헛간에는 생명의 따스함과 열기와 냄새가 있다. 그러나 모터가 멈추면 트랙터는 트랙터가 되기 전의 쇳덩이 처럼 죽어버린다.
시체가 싸늘하게 실어가는 것처럼 열기도 사라져 버린다. 트랙터 창고의 문이 닫히면 트랙터를 몰던 운전자는 차를 몰고 집으로 간다. 아마 집은 20마일이나 떨어진 시내에 있을 것이다. 운전사가 몇 주 또는 몇 달씩 헛간에 와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트랙터는 죽어 있으므로, 너무 쉽고 효율적이다. 일에서 경이가 사라져버릴 만큼 쉽고, 땅을 경작하면서 느끼는 경이가 사라져버릴 만큼 효율적이다. 경이가 사라지면 땅과 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정함도 사라진다. 트랙터를 모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땅을 알지 못하고 땅에 애정도 없는 이방인만이 느낄 수 있는 경멸이 자라난다. 질산 칼륨이나 인삼염이 곧 땅은 아니니까. 목화에서 뽑아낸 긴 섬유도 땅 그 자체는 아니니까? 탄소가 곧 사람인 것은 아니다. 염분도, 물도, 칼슘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모여야 사람이 된다. 하지만 사람은 이 모든 것의 합보다 훨씬 더 큰 존재다.
화학적인 구성 성분 보다 훨씬 큰 존재인 인간이 땅 위를 걸으며 쟁기로 땅을 갈아 돌을 골라내고, 운전대를 조종해서 땅 위로 불쑥 솟아오른 바위들을 슬쩍 넘어가고, 땅 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구성 성분 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인 인간은 역시 구성 성분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인 땅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계를 다루는 사람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땅 위에서 죽어버린 트랙터를 모는 사람은 오로지 화학적인 특징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땅과 자기 자신을 경멸한다. 함석문이 닫히면 그는 집으로 간다. 그의 집은 땅이 아니다.
등 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고 하고, 믿음에 영원히 불이 켜질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항상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걸 원하니까 움직입니다. 뭔가 얻고 싶다면 직접 나가서 얻어야죠. 사람들이 화가 나서 싸우려 드는 건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케이시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이 노인은 한 생애를 살고 이제 막 그 삶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이 분이 좋은 사람이었는지 나쁜 사람이었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분이 살아있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시를 읊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모든 삶은 거룩하다'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 말에 훨씬 더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떠난 노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 분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모든 것이 세밀하게 계획되어 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지만 그 방법은 수천가지나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기도를 한다면, 그건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여기 할아버님은 편안하고 곧게 뻗은 길을 얻으셨습니다. 이제 이분을 덮어주어 이 분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해드립시다." 아멘.
아기는 감기에 걸렸다. 자, 이 담요를 가져가. 양모 담요야. 우리 어머니 것이었지만......아기를 위해서 가져가. 이 것이 폭발의 시초다. 이것이 시작이다. '나'에서 '우리'로 변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을 소유한 당신이 이 점을 이해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인과 결과를 분리할 수 있다면, 페인, 마르크스, 제퍼슨, 레닌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소유라는 것이 원래 사람을 '나'속에 고착시켜 '우리'로부터 영원히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고장나버린 이 베어링을 보세요. 우린 이게 고장난 줄 몰랐기 때문에 아무 걱정도 안했어요. 지금은 고장난 걸 알았으니 고치면 되고요. 다른 일도 다 마찬가지예요. 전 걱정을 안할 거예요. 걱정을 할 수가 없어요."
"~앨, 너한테 덤비는 사람이 없는데도 먼저 방어자세를 취하지는 마."
"변화의 시기라는 게 있어. 그 때가 오면 죽음은 모든 죽음의 한 조각이 되고, 출산도 모든 출산의 한 조각이 돼.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과 죽는 것은 똑 같은 일의 양면에 지나지 않지. 그 때가 되면 세상이 더 이상 외롭지 않을게다. 상처를 입어도 별로 심하게 아프지 않을테고. 이젠 외로운 상처가 아니니까. 로저샨, 네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되는구나."
케이시가 재빨리 말했다.
"이건 확실히 압니다.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난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난 행운이나 불운 같은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확신하는 건 하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권리가 없다는 것. 사람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어요."
<2권>
이젠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새들이 처음으로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었다. 집 주위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소중한 땅으로 나가기 위해 첫 새벽의 빛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잊혔고, 농작물은 달러로 계산되었으며, 땅의 가치는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으로 결정되었고, 농작물은 땅에 심기도 전에 거래되었다. 흉작, 가뭄, 홍수도 이제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금전적인 손실을 뜻할 뿐이었다. 그들의 애정은 돈 때문에 점점 식어갔고, 사나움도 이해타산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이제 그들은 농부가 아니라 농작물을 파는 장사꾼, 물건을 만들기도 전에 팔아야 하는 소규모 제조업자가 되었다.
장사꾼 노릇을 잘하지 못한 농부들은 장사를 잘한 사람들에게 땅을 잃었다. 아무리 영리해도, 땅과 농작물을 아무리 사랑해도, 장사를 잘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가들이 농장을 소유하게 되었고, 농장은 점점 커져 갔으며, 농장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난 그러면 되는 줄 알았네. 기도를 제물로 삼은거지. 끈끈이에 파리가 달라 붙듯이 모든 금심이 기도에 달라붙고, 기도가 하늘로 날아가면서 근심도 같이 가져간다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게 소용없어."
"기도 덕분에 고기가 생긴 적은 없어요. 고기를 구하려면 돼지새끼가 필요하죠."
"그래,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품삯을 올려주신 것도 없지~"
"누구든 한 번이라도 자선을 받으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에 상처가 생기죠. 이건 자선이 아니예요. 하지만 자선을 한 번 받으면 결코 잊지 못하죠. 틀림없이 제시는 자선을 받아본 적이 없을 거예요."
"애들한테 뭐가 좋은 일인지 말하기 전에 애들 입에 베이컨이나 좀 넣어주지 그래요?"
"사람이 곤란해지거나 다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라는 것.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 뿐이니까. 좋은 걸 한 가지 배웠네요.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모두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지. 항상 그런 식이야.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런 일은 재미로 하는 사람은 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는 거지. 자기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워싱턴을 봐. 혁명을 성공시켰는데 나중에 개자식들이 워싱턴한테 덤벼들었잖아. 링컨도 마찬가지고. 두 사람을 죽이라고 소리를 질러 댄 사람들은 다 똑 같아.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야."
"~케이시가 자기 영혼을 찾아 광야로 나갔는데, 자기만의 영혼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자기가 커다란 영혼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자기가 갖고 있는 영혼의 작은 조각은 다른 조각과 합쳐져서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여보. 여자들은 그런 걸 알 수 있어요. 살면서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남자들은 단계 별로 인생을 살아요.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이 죽는 것, 그게 한 단계죠. 농장을 일구고 그 농장을 잃는 것, 그게 또 한 단계예요. 하지만 여자들에게 삶은 전부 하나의 흐름이에요. 개울처럼, 소용돌이처럼, 폭포처럼, 강처럼 그냥 계속 흐르죠. 여자들이 보는 인생은 그래요. 우린 그냥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고요. 조금 변하기야 하겠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에요."
봄까지 일이 없어. 일이 없다고.
일이 없으면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거야.
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땅을 갈고, 풀을 벨 때 말을 이용하지. 하지만 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녀석들을 굶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거야. 그건 말 얘기지. 우린 사람이잖아.
여자들은 남자들을 지켜보았다. 결국 파국이 왔는지 보려고. 여자들은 말없이 서서 지켜 보았다. 모여 있는 남자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대신 분노가 나타났다. 여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2014. 6. 8. 일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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