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대학, 학기(동방고전 한글역주 대전)도올 김용옥, 통나무, 2011.
先秦, 진나라 초기시대에 성립한 경서(經書)로써 「대학 」만큼 많이 인용되고 많은 논쟁의 씨앗을 후대에 제공한 서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고전(古典)의 세계에 있어서, 「대학 」처럼 밀도있고 체계적이며 총체적인 세계관을 불과 1,750여 글자 속에 담고 있는 치열한 경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맹자 」가 35,370 여자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학 」은 지극히 압축된 밀도 높은 서물이다. 「노자 도덕경 」의 절반도 되지않는 짧은 문장 속에 동아시아 문명의 근대적 사유의 원형이 다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길가메시 」이래의 태고의 서사시들이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들, 플라톤의 웅변적인 유려한 대화록들, 그리고 「로마인 서 」와 같은 바울의 진지한 서한들, 키케로의 찬란한 산문이나 아우렐리우스의 심도있는 명상록, 이 모든 문학이 「대학 」의 농축된 개념의 나열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한유의 「원도(原道) 」 첫 문단.
인간을 가급적 넓게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 일컫고, 사람으로서 행동할 때에 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의(義)라 일컫는다. 이러한 인의 원칙에 따라 걸어가는 길을 도(道)라고 일컫고, 나의 내면에 이미 충족하여 외재적 힘에 의존하지 않는 것, 그것을 덕(德) 이라 일컫는다. 이 때, 인(仁)과 의(義)라는 것은 구체적 내실이 있는 이름(定名)이지만, 도(道)와 덕(德)이라는 것은 구체적 내실이 없는 빈자리(虛位)일 뿐이다. 그러므로 도(道)에는 군자와 소인의 길이 갈라지고 德에는 凶이 있는가 하면 吉이 있다. 道와 德은 빈자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노자(老子)는 근본적으로 인의(仁義)를 얕잡아 보았다. 그러나 그가 근원적으로 인의를 궤멸시키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의 인의에 대한 견식이 매우 협소했을 뿐이다. 우물안에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늘이 참 작다고 말한다고 해서 하늘이 작은 것이 아니다. 노자는 사소한 온정을 따스하게 베푸는 정도를 仁이라고 생각했고, 작은 일에 근신하며 고고한 듯 행동하는 것 정도를 義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의를 협애하게 생각했으니 그것을 깔보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노자가 말하는 바 소위 道라고 하는 것은, 그가 우물안에 앉아서 생각하는 도를 도라고 말한 것 뿐이니, 결코 내가 말하는 진정한 도가 아니다. 노자가 말하는 바 소위 덕이라고 하는 것도, 그가 우물안에 앉아서 생각하는 덕을 덕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니, 결코 내가 말하는 진정한 덕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위 내가 말하려는 바의 도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빈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의의(仁義)에 합치되는 도덕성을 지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은 천하의 공언인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소위 도덕(道德)이라는 것은 인의(仁義)를 제거하고 말하는 것이니, 그것은 노자 개인 한 사람의 사언(私言)일 뿐이다.
한유(韓愈)
한문(寒門)의 집에서 태어났기에 진사시험에 합격했어도(25세) 관직의 기회를 얻지 못했고, 34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정원 貞元 17년, 801년) 사문박사(四門博士)라는 종7품의 관직에 취임할 수 있었으며, 그 뒤로 발표하는 문장마다 환관과 임금의 분노를 사서 계속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강렬한 시대정신을 표방하는 문장을 계속 썼다. 그는 결국 국자감 좨주(국립대학 총장, 國子祭酒, 국자감은 서울대학교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釋奠석전의례가 열리는 국가기관이며 그 학장이 먼저 술을 따라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좨주라 명했다.)를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이르기까지 결코 타협없는 삶을 살았다.(향년 57세)
사문난적(斯文亂賊), 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盜賊)이라는 뜻,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
우암 송시열(1607~1689)의 노론과 윤휴의 소론
희노애구애오욕-칠정
喜怒哀懼愛惡欲
이고(李翺)의 「復性書복성서 」, 모든 송유 도학자들의 문장 스타일의 프로토 타입이 들어있는 본격적인 철학서.
우리는 여기 이고의 성(性), 정(情)의 논의가 한유의 성정론에 비하여 훨씬 더 송유의 철학적 틀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유는 성에 대대적으로 정을 폄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고는 성의 방해자로서 情을 말하고 있고, 성이 본 모습을 갖기 위해서는 정의 작동이 식(息)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性을 무위의 리(理)로 보고, 情을 유위의 기(氣)로 보는 송명유학의 이원론적 틀이 이미 배태되어 있다. 그러나 이고의 성정론은 실상 정명원각(淨明圓覺)의 본심(本心)이 무명번뇌(無名煩惱) 에 덮혀 있다는 불학의 논리에 유교적 언어를 새롭게 입힌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종밀도 이승현성교(二乘顯性敎)를 말하면서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밝음이란 어두움에 대하여서만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며, 어둠이 근원적으로 멸하여 버리면 밝음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 夫明者所以對昏, 昏旣滅亦不立矣(부명자소이대혼, 혼기멸역불립의) - 이고의 성정론(性情論)
사마광(司馬光 1019~1086) 치지재격물론(致知在格物論)
인간의 삶은 인을 실현하는 것으로써 그 본집을 삼고(爲宅), 의를 따르는 것으로써 그 집을 나가서 다니는 사회생활의 길을 삼아야 한다(爲路). 이러한 인이라는 구체적 삶의 도덕성을 실천하는 세 가지 방법이 성의(誠意)요, 정심(正心)이요, 수신(修身)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사회적 장(場)이 천하(天下)요, 국(國)이며, 가(家)이다. 다스림의 궁극적 대상은 성의, 정심, 수신이라는 실존적 단계를 넘어서는 천하, 국, 가의 장이다. 그러니까 사마광은 8조목에서 앞의 6조목을 3조목씩 두 세트로 나누어 성의 , 정심, 수신은 실존적 측면으로 보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사회적 측면으로 본 것이다.
북송의 사마광이 쓰고, 남송의 주희가 간추린 「자치통감 강목 資治通鑑 綱目 」은 조선왕조에서 엄청 인기가 높았던 책이었다. 세종대왕은 「綱目강목 」을 잠을 줄여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 세종은 「강목 」에 사람들이 읽기 편하게 훈의를 달게 하였다. 세종이 편전(便殿)인 사정전(思政殿)에서 직접 참여하여 만든 것이기에 「사정전훈의 자치통감 思政殿 訓義 資治通鑑 」이라고 부른다. 139권에 달하는 이 방대한 책은 1436년~38년 사이에 간행되었다.
학지시행 學之始行 - 왕양명, 학문의 시행은 이미 행일 뿐이다.
이러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변증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의 내면적 결단이며, 그것은 결국 정심성의의 문제가 되고 만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 그 의지가 양명에게는 가장 핵심적 과제 상황이었던 것이다. 왕양명(王陽明, 1472~1528)
주자학은 분명한 하나의 학구적 이론체계이지만 양명학은 본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며 사회적 운동이며 일종의 대중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주희는 매우 차분한 문인학자였지만, 수인(왕양명)은 아주 정열적인 군인이었다. 군사전략을 전문으로 공부한 탁월한 실전의 장수였다 우리나라 「선조실록 」에도 "양명으로 하여금 오늘의 일을 경략하게 되면 왜적을 소탕할 수 있으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양명의 생평에 관한 정확한 인상을 전하는 말이다.
왕양명의 전습록(傳習錄) "필부필부와 더불어 같은 지평에 서는 것을 동덕이라하고, 필부필부와 더불어 다른 지평에 서는 것을 이단이라고 한다.(與愚夫愚婦同的是謂 여우부우부동적시위)
왕양명 "나는 평생 강학을 하였지만 그것은 단 세 글자로 요약된다. 치양지(致良知)
왕양명의 사구종지(四句宗旨)
진덕홍과 왕기가 서로 논쟁하자 양명은 희색이 만영하며 두 사람의 입장이 서로 반대되는 것 같지만 서로 취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결코 서로를 병(病)이 있다고 비난해서는 아니된다(不可相病)고 말하면서 덕홍은 공부(功夫)에 강조점이 있고, 왕기는 본체(本體)에 강조점이 있다고 말한다.
"무선무악은 심(心)의 체(體)이고, 유선유악은 의(意)의 동(動)이며, 지선지악은 곧 양지이고, 위선거악(爲善去惡)은 격물이다. 無善無惡心之體, 有善有惡意之動, 知善知惡是良知, 爲善去惡是格物"
우리나라 최초의 백운동 서원 (白雲洞書院), 경북 영주시 순흥면, 주자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安珦, 1243~1306)이 공부하던 숙수사 宿水寺 절터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중종 37년(1542)에 세웠다. 하바드 대학의 설립(1636년) 보다 94년이 빠르다. 그 뒤로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국가의 사액과 재정지원을 요청하여 1550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사액(賜額)
한국의 사상은 오직 한국어로써만 가능하다.
학기(學記)
제1장 화민성속(化民成俗)
합리적 사유를 發할 줄 알고, 훌륭한 인재를 구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기에는 충분하지만 대중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지 아니하다. 현자가 있는 곳에 찾아가 고개 숙이며 배우며, 멀리 떨어져 있는 사태까지도 체찰(體察)하여 판단하는 지도자는 대중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지만 백성의 삶의 양식을 변혁시키는데는 충분하지 아니하다. 군자(옥안(沃案,군주의 뜻))가 만약 백성의 삶의 양식을 변혁시키어 새로운 풍속을 이루고자 한다면 배움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니된다.
제2장 교학상장(敎學相長)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 是故古之王者, 建國君民, 敎學爲先. 悦命曰, "念終如典于學." 其此之謂乎. 雖有嘉肴,弗食不知其旨也. 雖有至道, 弗學不知其善也. 是故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 知不足, 然後能自反也. 知困, 然後能自强也. 故曰敎學相長也. 悅命曰 : "斅學半". 其此之謂也.
마우리 훌륭한 옥(玉)이라도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어도 배우지 않으면 도(道)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 성군들은 나라를 세워 백성들의 지도자 노릇을 하려면 반드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을 으뜸가는 과제로 삼았다. 『서경 』 「열명 」에 이르기를 "사람은 모름지기 처음부터 끝까지 일생동안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바로 성군들이 나라를 세움에 교육을 우선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천명한 말씀일 것이다.
비록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 비록 지극한 도리가 앞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배워보지 않으면 그 위대함을 알 길이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배우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가 있고, 가르쳐보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교육의 곤요로움을 깨달을 수 있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연후에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를 반성할 수 있게 되고, 교육의 어려움을 깨달은 연후에 교육자는 자신의 실력을 보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노라!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를 키운다. 「열명 」에 이와 같이 말했다.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 그 반이다." 이 말씀은 교학상장 敎學相長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제6장 교지소유폐(敎之所由廢) 교육이 망하는 여섯가지 이유
"獨學而無友 독학이 무우"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독학은 고루함과 편견과 과문(寡聞)을 조장한다. 대개 산속에서 도 닦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100% 엉터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특별한 환경속에서 혼자 공부했다는 사람은 그 향학열을 기특하게 보아줄 수는 있지만 학문의 정도를 걷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도락의 인간이 될 수는 있으나 타인의 스승이 되기는 어렵다. 어린 생명이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는 바로 독학(獨學)의 폐해(廢害)를 막기 위한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토론하지 않으면 학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학교수가 되어도 정당한 토론을 거부하는 자들은 그 사회의 담론을 이끌어갈 수 없다.
제9장
회이이사 가위선유의 (和易以思, 可謂善喩矣), 평화로움(和)과, 쉬움(易)과 사색(思) 이 세가지가 갖추어지도록 만드는 스승이야말로 위대한 가르침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斅學半 敎學相長, 修道之謂敎, 善喩
교육이란 학생의 기름이 아니라 스승의 기름이다.
학생을 교육한다는 것은 그 학생이 위대한 스승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君이라는 것은 모든 조직의 장(長)으로 생각한다면 21세기에도 어김없이 맞는 말이다. 미국의 일류 사립대학에서도 학생들을 선발할 때는 반드시 "리더십"이라는 항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도 이러한 「학기 」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리더를 기르는 것이다.
교육은 리듬이다. 따라서 어떠한 획일적 원리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호상적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은 교육과정을 통하여 같이 성장해 가야 한다.
2015. 2. 14. 토요일.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61. 자치통감 1.전국(戰國),진(秦)시대, 사마광, 권중달 옮김, 도서출판 삼화, 2012. (0) | 2020.02.26 |
---|---|
560.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15 (0) | 2019.12.17 |
558. 아미엘의 인생일기,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2006, 동서문화사 (0) | 2019.09.27 |
557. 오즈의 마법사 1~14권, 프랭크 바움. (0) | 2019.09.09 |
556. 유학의 변신은 무죄, 공자 & 맹자, 강신주, 김영사, 2014 (0) | 2019.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