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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조지 스타이너, 심지, 1983.

햇살처럼-이명우 2020. 6. 23. 17:18

593.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조지 스타이너, 심지, 1983.

 

1. 두 거인

  문학 비평은 사랑을 빚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분명히 그러나 신비스럽게도, 시나 희곡이나 소설은 우리의 상상을 사로잡는다. 작품을 읽고 났을 때의 우리는 그것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우리 자신과는 같지 않다.(......)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마치 폭풍우처럼 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 엄청난 변형력을 가하여, 지각의 문들을 온통 열어제끼고, 또한 우리가 이전까지 믿음으로써 쌓아올린 축조물들을 무너뜨린다.

 

2. 톨스토이

  연극에서 많은 것을 배웠음에도 희곡을 한 편도 쓰지 않았던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달리 톨스토이는 소설과 희곡을 다 쓰면서도 두 장르를 엄격히 구별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신문적 허구 속에 서사시적 요소를 도입하려는 지금까지의 시도들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포괄적인 시도였다.

 

3. 도스토예프스키

  '먼지로 더러워졌지만, 아직도 살아있다. 그 가운데에는 빨간색의 ......그것은 나로 하여금 쓰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그것은 끝까지 삶을 주장하고 있다. 온 들판에 오직 혼자 남아있으면서도,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고 삶을 지켜온 것이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에서 화자는 자신의 언행을 통해 궁극적인 "아니다"를 표현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고리키에게 "도스토예프스키는 공자나 석가의 가르침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는 차분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지하생활자는 자신의 글 속에서 분명 비웃음으로 껄껄 웃어제꼈을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이러한 그의 비웃음에 대하여 질료를 부여해 왔다. "갇힌 세계" - 가령 죽음의 수용소 - 는 인간의 야만성, 인간성의 타다 남은 불씨 조차 내려 짓밟는 인간의 야수적 기질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을 확인해 준다.

  그래서 지하생활자는 자신의 종족을 "두 다리로 걷어차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생물"이라고 규정한다. 톨스토이도 인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생물"이라는 말 대신 항상 "인간" 이라는 말을 썼다.

 

4.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인류학자들과 예술사가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화는 조상(彫像)이 되고, 조상은 디시 새로운 신화를 발전시킨다. 신화학과 경전 그리고 세계상들은 언어나 대리석 안으로 들어온다. 단테가 정신의 움직임이라고 불렀던 영혼의 내적운동은 예술형태로 실현된다. 그러나 실현과정에서 신화학은 방향을 바꾸거나 재 창조될 것이다.  

  소설기법은 결국 형이상학적 체계, 즉 경험의 근저에 있는 철학으로 귀착된다고 싸르트르가 말했을 때, 그는 예술창조의 과정에 작용하는 이중적 역학관계 가운데 하나의 방향만 지적한 셈이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형이상학이 예술가의 창조기법으로 역작용을 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예술가의 기법 - 즉, 톨스토이의 소설에 있어서의 서사형식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있어서의 드라마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톨스토이는 호머의 서시시의 전통을 이어받은 제일 가는 상속자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세익스피어 이후 가장 드라마적 기질을 타고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톨스토이의 정신은 이성과 사실에 열중해 있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합리주의를 경멸하고 역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땅과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전원적 분위기의 시인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자, 언어의 땅 위에 현대도시를 훌륭하게 건설한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진리에 목마른 사람이자, 지나치게 진실만을 추구한 나머지 그 자신과 주위사람들까지 파멸시켜버린 사람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리스도에 대항하기 보다 차라리 진리에 대항하는 길을 택하고, 완전한 이해마저도 의심하며, 불가사의의 편에 선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코울리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제나 인생의 고귀한 길 위에 서 있었던" 사람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부자연스러운 것의 미로, 즉 영혼의 지하실과 늪을 향해 나아간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구체적 명백함과 구체적 경험의 총체를 불러내면서, 마치 콜로서스처럼, 감촉할 수 있는 이 대지 위에 서 있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항상 환상과 유령 같은 것의 가장자리에, 악마의 침입을 받기 쉬운 상태로 서 있다. 톨스토이는 건강과 올림푸스 신들의 생명력의 화신이었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질병과 강박관념으로 가득찬 에너지의 총체였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운명을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았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운명을 동시대적 관점에서, 그리고 극적 순간의 힘찬 진동 속에서 보았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시행된 시민장으로 영결되고,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마련된 무덤으로 운구되었으며, 토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정교회이 엄숙한 의식 속에서 페트르부르크에 있는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사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뛰어난 신의 인간이었으며, 톨스토이는 신에 대한 은밀한 도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톨스토이가 아스타포보 역의 역장 사택에서 임종을 맞았을 때, 그의 침대 머리 맡에는 두 권의 책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몽테뉴의 「수상록 」과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었다고 전해진다. 톨스토이는 마치 자신의 위대한 맞수와 그리고 자신과 동류의 인간이 지켜보는 앞에서 죽기를 원했던 것처럼 보인다. 몽테뉴를 선택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몽테뉴는, 톨스토이가 마침내 그 미스테리를 이해했던 상황에 처했을 때 인생을 노래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톨스토이가 자신의 격렬한 천재를 잠시 진정시키고 나서 저 유명한 「수상록 」 제2권 제12장으로 눈길을 돌렸더라면, 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맞수에게 똑 같이 적용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판결문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 그것은 하나의 위대한 기적의 창조자이다.

 

201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