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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_왕의 모습을 보이는 자가 왕이다.

햇살처럼-이명우 2024. 8. 6. 14:30

  아달휼의 등장에 정신을 놓고 있던 개걸루가 고함쳤다. "이제와서 족장 놀음을 하시겠다고? 십년도 전에 숙신을 버린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느냐! 그래, 이제 무슨 기분이 내켜서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아니, 내가 아니다."

  "무어라?"

  "왕으로 정해진 자가 아니라 왕의 모습을 보이는 자가 왕이다. 숙신이 섬길 왕은 내가 아니라 저기 묶여있는 저자이다."

  아달휼은 포박당한 을불을 가리켰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해 보아라! 누가 온 재산을 가지고 와 숙신에 토해내겠으며, 누가 숙신 백성을 위해 밥을 퍼주겠으며, 누가 전식을 하는 부부에게 말을 베어 주겠느냐. 저 개걸루가 그럴것이냐? 아니면 단구가 그러겠느냐? 대답해 보아라!"

  (......)

 

  "고구려가 너의 백성음은 알겠다만 어째서 숙신 역시 너의 백성이냐?" (아달휼)

  "이 세상에 죽어도 되는 목숨은 하나도 없소. 내가 고구려를 생각한다면 숙신을 생각함도 마땅한 이치요." (을불)

  "내가 하지 못한 일을 그대가 하였다. 비록 족장의 이름은 나의 것이나, 그 이름을 포함하여 숙신은 모두 그대의 것이다."

  말을 마친 아달휼은 갑자기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을불에게 절을 올렸다. 을불이 말렸으나 아달휼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숙신의 족장 아달휼, 앞으로 당신을 주군으로 섬길 것을 맹세합니다. 모든 숙신의 백성 또한 당신을 주군으로 섬길 것이며 주군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갑자기 왜 이러시오?"

  "당신은 내가 버린 백성을 형제라 불렀습니다. 숙신의 누가 당신을 주군으로 모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달휼의 얼굴에는 진심이 배어 있었다. 참으로 어렵게 얻은 우군이었다. 

  "고맙소."

  을불 역시 아달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목에서 뜨거운 음성이 밀려 나왔다. 

  "율형님, 고맙소. 이제 나는 숙신을 영원히 나의 백성으로 알고 이들을 지키는 데 나의 삶을 다하겠소."

  두 영웅은 서로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언제까지나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고구려2, 김진명, 세움, 중에서)

 

  모두 자기가 대통령으로, 때로는 국회의원으로, 사장으로, 부장으로, 주인으로 정해진 자 처럼 우두머리 노름을 한다.  그러나 왕으로 정해진 자가 아니라 왕의 모습을 보이는 자가 왕이다. 왕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자, 왕의 모습을 보여라. 저 고구려의 을불처럼 온 재산을 숙신의 백성에게 토해내고, 숙신의 백성을 위해 밥을 퍼주고, 전식을 하는 숙신의 부부에게 말을 베어 먹이는 그런 모습을 보여라. 그래서 을불은 숙신을, 고구려 최고의 무장 아달휼을 얻었고 그들의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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