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도 비겁한 폭군이 아닌가."
"차라리 전쟁터에 나가는 게 낫지."
"그러게, 시원하게 한판 붙어 이기면 되지, 이 무슨 생고생이람."
노역에 끌려나온 백성이나 병장기 대신 연장을 든 병사나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요하벌판을 내달리며 이르는 곳마다 승전고를 울리던 을불의 고구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개마대산을 울리며 진군(晉軍)을 궤멸시킨 개마기병의 위용, 최비의 낙랑군을 전멸시키다시피 한 낙안평 대전, 그리고 천하 불세출의 영웅 모용외를 죽음에 이르게 한 하성 전투까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고구려의 추억이었다.
그러나 그 추억만을 되새기기에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도 컷다. 축성이란, 더구나 사유가 고집하는 석성(石城)의 축성이란 농사일과는 달라서 고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필요한 돌을 구하기 위해 암산(巖山)을 부수거나 거대한 바위를 굴려 내려야 했고, 다시 그것을 다듬고 운반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죽고 다치는 일 또한 허다했다.
사유는 신축하는 모든 성의 성벽을 돌로 쌓을 것을 명했다. 황하족의 성들은 대부분 흙으로 된 토성(土城)이거나 벽돌로 만든 전성(甎城)이었고, 이전까지 고구려 또한 도성 등의 주요 성곽을 제외하고는 토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성벽의 강고함에 기대어 싸워야 하는 수성(守城)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없었고, 장마철이나 봄철 해동기가 끝나고 나면 유실되거나 허물어지는 곳이 많아 보수와 정비에 드는 노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석성. 그것은 꿈이었다. 일단 쌓고 나면 천 년을 견디어 내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지난하였기에 아무도 꿀 수 없었던 꿈이었다. 더구나 나라 안의 모든 성을 돌로 쌓는다면 거기에 소요되는 인력과 비용과 시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유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꿈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고 있었다.
"적의 화살에 우리 병사들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성벽 위에 돌로 가퀴를 지어라."
"성문은 두꺼운 비자나무로 엮어 화공(火功)에도 끄덕없게 하라."
"성문 앞으로 옹성(甕城)을 내어 성문을 보호할 수 있게 하라."
환도성이 점차 모습을 갖추어 감에 따라 태왕 사유의 주문 또한 늘어만 갔고, 이미 피골이 상접한 인부들 중에는 그런 태왕을 원망하며 쓰러지는 자가 속출했다. 전쟁을 피해 물러선 태왕. 만백성 가운데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국원황 7년. 그렇게 고구려는 태왕 일인의 고집으로 인해 끝도 보이지 않는 도피와 자조의 세월로 접어들었다.
<고구려5, 김진명, 새움, 2016 중에서>
지금 안전협회에서 석성은 무엇인가?
디지털 전환으로의 혁신이다. 요원해 보이는 일처럼 보이지만 100년 안전협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불가능이라고, 엉뚱한 뒷욕심이 있을거라고 의심하는 태도는 맞지않다. 부정적인 태도는 부정적인 행동을 만들어 낼 뿐이다. 화합하여 디지털 혁신의 방법에 대하여 구성원 모두가 의견과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수용하고 개선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현재 나의 답은 스마플을 확대 보급하는 것인데, 생각이 다른 동료들도 많다. 재해예방의 성과를 데이터로 제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일단 '경기북부지회 석성'을 하나 만들어 방어전을 해볼 생각이다. 그 결과 성과가 있다면 다른 조직들도 우리를 따라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새해 근무하는 첫날 경기북부지회 석성을 쌓자고 구성원들에게 이야기 한다.
20250102
'안전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110_혁명적인 실천 (0) | 2025.01.10 |
---|---|
20240104_고구부의 위험성 평가 (0) | 2025.01.04 |
20241222_또 다른 고구려의 방법 (1) | 2024.12.22 |
20241215_산업재해의 기록관리와 발생보고 (6) | 2024.12.15 |
20240924_'관리감독자 직무와 역할' 강의 중에서 (0) | 2024.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