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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도쿠가와 이에야스.19, 아마오카 소하치, 솔, 2002

햇살처럼-이명우 2013. 4. 30. 14:40

376. 도쿠가와 이에야스.19, 아마오카 소하치, 솔, 2002

아무리 고집스럽게 자신을 주장해온 자에게도, 아무리 추하게 발버둥 치던 무리에게도 신불神佛은 똑 같이 죽음을 내린다......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 만을 인생이라 생각한다면 출세 이외에는 어무것도 바랄 것이 없으리라. 그러나 살아 있으면서 남의 생사를 음미해보면 그 맛은 무한하다.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 남을 용서하는 마음의 바탕이 된다니 이 얼마나 큰 깨달음이란 말인가. 남에게 관대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앞길에는 발전만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에는 한 없는 무명無明이 계속 될 뿐이다.

불세출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히데요시도 이미 번뇌가 지배하는대로 움직이는 방자한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서 명분없는 전쟁처럼 무서운 재앙을 초래하는 것은 없어. 깊이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일이야.

인간은 누구나 죽은다......해데요시는 지금 그 죽음의 반면半面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죽는 동시에 어느 시대에도 누군가 반드시 계속 살아있다. 그 인생의 반면을 망각한다면, 그 사람의 생활방식, 견해, 사고방식은 절름발이가 된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 보다 인간의 이상이란 이 처럼 연약한 노인 앞에서는 변형되게 마련 아닐까.....?
전에는 '천하를 위해' 평화를 지향하며 노부나가 이래의 꿈인 전국통일에서 곁눈을 팔지 않았던 히데요시 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중한 어머니도 인질로 보냈고, 몇 번이나 자기 생명마저 내걸고도 태연했던 히데요시였다.
그런 히데요시가 지금은 이제까지의 자기 생애와는 전혀 상반된 망집이라고나 할 욕망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어린 히데요리에게 토요토미 가문의 뒤를 잇게 하고 싶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희원일 수는 있으나, 세상을 구하려는 영웅의 비원은 아니었다.

'아니, 이 모든 것은 노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육체의 노쇠에 따르게 마련인 푸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히데요시의 지세이
"이슬로 떨어지고 이슬로 사라질 이 몸이거는
나니와浪花(오사카와 그 부근)의 영광은 꿈속의 꿈......"

히데요시는 케이쵸 3년(1598년) 8월 18일에 예순 셋(63세)에 흙으로 돌아갔다. 이 때 이에야스는 57세.

이에야스는 웃었다.
"모든 것을 살린다......오늘부터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업일세. 알겠나, 사도......"

인간처럼 암시에 약한 동물은 없다.

인생이란 얼마나 추악한 죄업의 누적이고, 그러면서도 허무하기만 한 희극이란 말인가. 오와리의 나카무라中村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이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무엇보다도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많은 허위와 살육을 쌓아 올렸다는 것만으로 불세출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고대광실에 살면서 온갖 영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이것도 한 조각의 꿈, 지금 쯤 발가벗겨진 싸늘한 시체위에 마른 장작이 쌓여 불태워질 때를 기다리고 있을 터...... 이것은 누구의 형벌, 누구의 보복일까......?
요도부인 챠챠의 할아비지도 아버지도 살아있으면서 배에 칼을 댔다. 양아버지 시바타 카츠이에와 생모 오이치 역시 정장을 한 채 불타는 성과 함께 죽었다. 그들의 죽음에 비해 타이코의 죽음은 도대체 얼마나 더 훌륭하다는 말인가......?
한쪽에는 최소한 적에게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백이 있었다. 타이코에게는 그런 것 조차 없이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사방에 머리를 숙이다가 죽었다.
요도부인은 그 추악한 최후를 생각만해도 구역질이 났다. '그런 추악한 죽음이 성공한 자의 죽음이라면, 나는 차라리 아버지나 양아버지 같은 최후를 맞고 싶다......'

2010. 3. 12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