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 마음을 작동법(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에드워드 L.데시, 리처드 플래스트, 에코의 서재, 2011
저항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율성은 자신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율적인 사람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자율적인 사람의 행동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고, 흥미를 느낀 것에 열성을 바친다. 진정한 자아에서 나온 행동은 진실하다. 반면, 통제당한 행동은 압박을 받은 결과로 나타난다. 통제된 사람들은 개인적인 열정없이 행동한다. 그것은 자아의 표현이 아니라 통제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만다.
"하지만 저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이 친구가 보인 태도는 전형적인 순종이다. 찰스 라이히(Charles Reich)가 말한 '익명의 권위 nameless authority'라는 것이 친구의 머리 속에 확고히 박혀 순종하는 사고와 행동을 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옳은 질문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남들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직장상사나 의사, 교사들이 가리키는 방향이나 몸소 보여주는 행동이 부하직원이나 환자, 학생들의 동기부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율적인 행동이란 무엇이며, 그 행동을 이끌어낸 동기부여 과정은 무엇인지......
'내면의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
붉은 털 원숭이들이 아무런 보상이 없음에도 상자열기를 계속하는 것을 보고 심리학자 '해리 할로 Harry Harlow' 가 정의 .어린 아이의 호기심도 이것 때문이다.
행동주의의 심리학자 B.F 스키너의 모교 해밀턴 대학.
행동주의는 특정한 행동을 하면 보상을 준다. 가능한 한 그 행동이 일어난 직후 보상을 준다. 처벌 보다는 보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보상을 할 때는 일관된 원칙을 따른다......프로스펙트 파크 동물원의 물개들을 춤추게 한 바로 그 원칙들이다.
행동주의는 타고난 학습동기는 없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집이나 유아원에서 끊임없이 주변 사물을 탐색하는 모습과 맞지 않다.
내면의 동기부여 상태는 어떤 행동 그 자체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이지, 돈을 버는 것이든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든 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어린아이들은 학습을 하면서 뭔가 다른 것을 성취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호기심을 느끼기 때문에, 알고 싶기 때문에 학습한다. 아이들의 학습에는 내면의 동기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헨리(로버트 헨리 Robert Henri) 가 말한 '평범한 존재의 순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금전적 보상은 내면의 동기를 떨어 뜨린다. 옛 유대인 우화.
동네 사람들이 마을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대인을 쫒아내기로 하고 깡패들을 보내 그를 괴롭혔다. 날마다 깡패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우자 양복점 주인은 한 가지 꾀를 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깡패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우자 그는 수고했다며 10센트짜리 동전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깡패들은 한층 더 신이나서 욕설을 퍼붓고는 돌아갔다. 다음 날 깡패들이 다시 10센트를 기대하며 모여들었다. 하지만 양복점 주인은 이번에는 돈이 없다며 5센트짜리 동전을 나눠 주었다. 깡패들은 조금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5센트가 어디냐 싶어 냉큼 받아들고 소란을 피우다가 떠났다. 세째날에는 양복점 주인이 1센트짜리 동전을 내밀었다. 깡패들은 겨우 1센트 받고 시간을 들여 소란을 떨지는 않겠다고 말하고는 조용히 떠났다. 바로 양복점 주인이 바라던 결과였다.
경쟁 역시 내면의 동기를 훼손하는 요소이다......
문제의 핵심은 자율성과 통제의 관계다. 똑 같이 어떤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해도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에서 조금이라도 자율을 누리면서 자율성을 인정받으면 집중도는 훨씬 높아진다. 더 나아가 그 과제를 즐기기까지 한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선택권을 준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중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고혈압 약.
의사가 고모님 스스로 약 먹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하자 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는데, 고모님은 책임감 있게 의사의 지시에 따랐다. 첫째, 고모님은 자신의 특성, 즉 밤마다 우유 한 잔 마시는 슴관에 맞춰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계획할 수 있었다. 자기가 더 쉽게 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계획을 짠 것이다. 둘째,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고모님이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내면의 동기가 강화된 것이다. 물론 의사가 의료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줘야 한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최대한 여지를 준다면 긍정적인 동기부여 효과가 나타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보상을 주는 사람의 의도, 보상을 주는 방식 : 리처드 라이언.
보상은 대개 권력을 누리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 주는 것이 보통이다. 통제할 의도도, 좀 더 듣기 좋게 얘기하면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보상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받는 사람은 그 보상을 통제당하는 경험으로 인식한다.
보상은 좀 더 규칙적으로 바이올린 연습을 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행동의 실상은 우리가 원했던 것과 다를 수 있다. 보상 보다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춰라.
은연 중에라도 통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지는 않은가? 칭찬이든 보상이든 한계설정이든, 내면의 동기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면 통제하려 한다는 느낌을 주는 말과 행동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중계하면서 은메달을 딴 선수의 연기가 실패인 양 해설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세계 2위의 선수가 패배자처럼 여겨진다. 승자는 단 한 명 뿐이고,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 보다는 승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긴다.
경쟁을 꼭 이런 식으로 다뤄야 하는 걸까? 경쟁의 진정한 기능은 도전적 상황에 맞설 기회, 자신을 시험해보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고, 그 과정에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그 위에 덤으로 따라올 순 있지만, 그렇게 덧붙여진 압박감은 내면의 동기를 떨어뜨리기만 할 뿐이다.
자율성은 없고 자신감만 있는 사람이라면 인성이 없는 유능한 꼭두각시일 뿐이다.
최상의 성과를 내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내면에서 동기가 나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행동-결과 연관관계를 이해하고, 자기에게는 그 결과에 이룰 능력이 있음을 아는데서 시작된다.
심리학 - 내면 : 프로이트 - 무의식적은 심리적 역동성
- 외면 : 스키너 - 행동주의 , 인간행동의 원인은 강화(보상)
* 처벌은 통제수단, 한계설정은 책임감 독려
한계 설정시 고려사항
1. 되도록 넓게 설정 - 선택할 수 있도록
2. 한계를 넘어설 경우 빚어질 결과도 미리 정해둔다.
3. 한계가 정해졌으면 지키도록 한다.
한계를 넘어 섰을 때 생기는 결과는 처벌과 다르다. 처벌은 통제수단이지만, 한계설정은 통제가 목적이 아니라 책임감 독려가 목적이다. 적절한 한계를 정하고 공정한 결과에 합의했다면, 한계를 지킬 것인지 넘어설 것인지는 학생이나 직원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그건 당사자가 선택할 몫이다. 한계를 정한 후 상대방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힘겨루기가 빚어졌다면 한계설정은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린 셈이다. 한계는 명확히 정해두고 그대로 따라야 할 문제이지, 싸우고 압박하고 갈등을 일으킬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나 학생을 상대로 한계를 정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선택으로 가득 차 있고, 선택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동시에 결과에 책임질 준비도 해야한다.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남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며 한계를 정해주는 사람은 이미 시작부터 한계설정에 실패한 셈이다. 남들이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게 해야 그 과정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계를 정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압박을 최소화하며 개방적으로 의사소통해야 한계설정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보상은 신중하게.
대부분 1등이 상을 받는다. "가장 중요한 성과를 냈거나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인 부서에게 상을 주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2등, 3등 한 부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했지만, 실은 어쩌면 그 해의 최고 성과를 거두었을 수도 있다.
교사와 관리자, 부모들은 대부분 자율성을 제대로 키우거나 선택의 여지를 주지 못한다. 왜 그런 것일까?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흔히 도와주려 하기 보다는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 큰 문제, 하지만 막상 해결하기 쉬운 다른 장애요인도 있다. 바로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자율성을 가로막는 것은 교사와 관리자의 통제적인 성격과 기술적 능력부족만은 아니었다. 상황 자체도 장애요인이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은 지적, 정서적으로 가르치는데 열정과 관심이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윗선의 압박을 받으면서 열정을 잃어버리고만 교사들이 너무나 많다. 표준화된 교과과정과 정해진 교재와 교구, 평균성적을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 등이 문제였다.
이처럼 압박을 받은 교사들은 더 통제적으로 변한다. 압박감을 느낀 교사가 다시 학생들을 압박하는 셈이다.
실험
피실험자 교사를 실험실로 불러 아이들에게 문제해결 방법을 가르치게 했다. 사전에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고, 주의사항 목록과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모두 제시하였다. 그리고 무작위로 두 학생집단 중, 하나를 가르치게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 쪽 집단을 맡은 교사들에게 "가르치신 학생들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 뿐이었다.
교사들의 수업은 모두 녹음되어 분석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높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는 말을 들은 교사들은 그렇지 않은 교사들에 비해 수업 중 말하는 시간이 두 배 길어졌다. 또 명령어는 세 배, 통제적 발언('해야한다'와 같은 말)은 세 배 더 많이 사용했다.
어떻게 보면 꽤 역설적이다. 부모나 정치가, 교육행정가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내용을 개념적으로 깊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한 교사들을 압박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교사는 더욱 더 통제적으로 행동한다. 익히 드러났듯이 학생들의 내면의 동기와 창의성, 개념이해능력은 결국 훼손되고 만다. 교사가 성과압박에 시달릴수록 제대로 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직원(혹은 자녀, 운동선수, 학생)들이 더 큰 성과를 내게끔 하라는 압박을 가하게 된다. 그러면서 결국 허무하게도 자신의 노력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다.
우리 실험은 교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지만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과가 똑 같았을 것이다. 부모나 관리자들이 압박을 느끼면 자율성을 키워주기가 어려워진다. 윗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랫사람들을 통제하게 되고, 이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는 높은 위치에 있는 교사와 부모, 관리자들 자신의 자율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학생이나 직원들의 자율성도 제대로 뒷받침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르치고, 양육하고, 지휘하는 사람들의 자율성 욕구가 충족되도록 도와줄 사람, 혹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변화하겠다는 결심은 스스로 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변하려는 이유를 찾아야하고, 성공했을 때 누릴 긍정적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이처럼 변화의 동기를 파헤치고 들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진정한 선택을 할 기회가 온다. 그 때의 선택은 변화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해오던 행동을 계속하는 것일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밑바탕이 되는 동기에 관심을 가지고 진정한 선택을 내리는 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그 사람을 계속 통제하지는 못한다. 동기에 대한 탐구는 어려운 과정이다.
여러 연구결과에서 나타났듯이, 동기부여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에 나쁜 행동을 그만두게 할 수 있다. 통제당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동기를 부여받아서 체중감량에 도전했다면 성공확률이 더 높고, 2년 후에도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할 확률도 높다. 로체스터 대학 심리학 교수 윌리엄스와 동료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더 자율적일 때는, 다시말해 내면의 동기를 갖고 중요한 행동규칙을 통합한 상태일 때는, 애초부터 위험한 생동을 시작하지 않으며 설사 시작했다고 해도 더 쉽게 중단할 수 있다.
심리사회적 의료, 혹은 환자 중심의료에서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몇가지 길을 제시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왜 그 제안을 했는지 근거를 대고,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고, 통제적인 말투나 행동을 되도록 삼가면서 자율성을 존중한다.
치료행동의 주체는 환자다.
자율성을 존중하는 의료진이라면 환자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과식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치료계획을 세울 수 있다. 환자마다 필요한 것이 다 다르고 장애요인도 달리 나타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고, 의사 혼자 생각해 낸 치료계획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궁극적으로 환자의 행동(더 나아가 환자의 건강)은 환자 본인의 책임이다. 강제로 입원을 시키고 약을 먹이지 않는 한 의사들이 처방에 따르지 않는 환자를 호전시킬 수는 없다. 흡연이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환자에게는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고, 따라서 본인이 원한다면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의사들은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의 행동을 막지 못한다. 그리고 조언자의 역할을 넘어 통제자가 되면 대개는 환자에게 지나치게 개입하고 만다. 환자 자신의 책임마저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 환자 자신의 책임이라고는 했지만 의사들 또한 환자가 건강한 행동을 하게끔 뒷받침할 책임이 있다. 결국 의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통제를 하지 않으면서 환자들에게 건강한 행동을 할 것을 독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니코틴은 고혈압을 악화시키므로 특히 삼가해야 한다는 설명을 할 수 있다.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 자신의 행복을 위해 변화를 시도하라고 독려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멀리 나아가 통제를 가하기 시작하면 역효과만 날 수도 있다.
성미 고약한 일흔 두 살의 골초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해 동안 금연을 권고해도 말을 듣지 않는 그를 보면서 의사들은 결국 담배 때문에 죽게 될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의사들에게 한 방 먹였다고 기뻐했다. 노인은 의사들이 너무 통제적이어서 저항했던 것이라 말했지만저항의 대가는 치러야 했다.
건강을 위한 행동은 결국 환자의 동기와 의료진의 접근이 상호 작용한 결과물이다. 더 긍정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그 행동을 진정으로 원할 동기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된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좋은 부모와 좋은 교사, 좋은 관리자, 좋은 의사가 되는데는 한 가지 공통점, 바로 사람을 대할 때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인간이 되려면 감정이 자극받을 때 행동을 관리할 통합적 과정을 발달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분노와 역겨움, 즐거움 등을 느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 감정에 대해 말을 할지말지, 그 감정을 길게 끌지말지, 문제를 해결할 지 그 상황을 그저 벗어나버릴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감정에 대해 통합된 정도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하는 문제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감정은 행동을 결정하는 대신 행동선택과정에 관여하는 하나의 정보에 그친다. 감정의 정체를 인식하고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충분히 고려한 연후에 행동이 결정된다. 자율적인 인간은 감정을 완전하게 경험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자율성과 삶의 경험을 제한하는 또 다른 기대는 인생최고의 목표가 행복한 삶이라는 믿음이다. 동화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모호한 말로 끝난다. 하지만 행복은 그렇게 몸바쳐 얻어야 할 것이 아니다. 항상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공포나 슬픔, 역겨움, 분노 따위를 불러 일으키는 영화나 오페라를 일부러 보러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극장에서든, 히말라야 산 속의 극한에서든 이런 감정을 경험하는 것에는 우리를 끌어당기는 무엇이 있다. 우리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에서부너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감정을 추구한다. 공포는 행복이 아니다. 슬픔과 역겨움, 분노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분노나 역겨움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행복은 그저 거짓 개념에 불과하다. 자연스럽지도 않고 많은 이들이 실제로 추구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 발달을 촉진하지도 않는다.
행복만을 바라게 되면 오히려 인간 발달이 저해된다.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경험이 억압되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슬픔을 억누르고 위험과 맞닥뜨렸을 때 두려움을 부정한다. 살아있음의 진정한 의미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폭 넓게 경험하는 것이다. 행복만을 추구하다보면, 다른 감정의 경험을 가로막고 결국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쉽다.
삶은 다양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성공하고 실패한다. 관계를 맺고 사랑을 잃기도 한다. 실패나 실연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려는 사람은 없지만 이런 경험에 동반되는 순수한 감정의 경험은 삶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자율적인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 경험은 삶의 가장 생생한 선물이다. 내사된 비난 때문에 감정을 거부하는 사람도, 북받치는 감정에 휘말리는 사람도 자율적으로 살아간다고 볼 수는 없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율적인 사람이다.
'동기부여 기법'이란 것은 없다.
동기부여는 기법이 아니라 내면에서 와야한다.
개인적인 변화의 이유를 찾았을 때, 그리고 부적응 행동의 바탕에 숨은 불안과 무능력, 분노, 고독등 다양한 감정과 대면하고 해결 할 마음을 먹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변화의 동기가 마련된다. 그 상태가 되었다면 여러 기법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결단이 없다면,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변화의 계기가 없다면기법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기법이 자신을 바꿔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내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외부의 인과관계에 의지하며, 자율적이기 보다는 통제를 받음으로써 의미있는 개인적 변화를 이루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변화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관심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왜 과식을 할까? 왜 아내에게 고함을 지르지? 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할까? 왜 이렇게 담배에 의존하지? 몇 년 전, 몇 십년 전에 당신이 그 행동을 선택한 이유는 그 것이 힘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행동의 이유를 찾는 것은 좋은 출발이지만 비난으로 옮겨가서는 안된다. 변화의 과정은 부적응 행동의 이유를 인식하면서 탄력을 받기도 하지만 자기 비난에 빠져 방해받기도 한다.
의미있는 변화는 유기체적 준비에서 나온다. 지금이 변화의 시기라는 느낌, 매 순간 노력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압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 비난과 마찬자기로 압박 또한 상처만 입힐 뿐이다. 압박을 느끼면 순응하거나 저항할 수 밖에 없다. 순응은 변화를 낳을지 모르지만, 그 변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저항은 애초부터 변화를 가로막는다. 의미있는 변화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행동의 이유에 관심을 두며 달라지겠다고 결심할 깨 일어난다.
"편안하게 생각해. 상황을 즐기라고,. 지금 상태를 존중해 봐. 변화를 요구하는 건 그 다음 일이야."
자유는 결국 선택과 책임이다.
인간 자유의 핵심에는 선택이 있다. 자율적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지만 통제받는 사람(그리하여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누군가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앉아!'라고 말한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바로 앉을 수 밖에 없다. 내사된 가치도 우리를 그렇게 주저앉힌다. 그러한 내적, 외적 힘은 인간의 선택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신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매 손간 선택을 통해 존재를 창조하고, 자기 존재에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억압이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도 인간이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 속의 우리 모습과는 다르다. 살아있는 유기체인 우리는 여러가지 약점이 있다. 그 약점들 때문에 기본적인 욕구충족이 차단되면 자유를 느끼기가 극히 어렵다. 굶주린 사람이 굴복만 하면 먹을 것을 얻을 수있는 상황에서 자유와 진실성을 지킬 수 있을까? 이것을 두고 먹을 것 때문에 인격을 팔아버렸다고 손쉽게 비판할 수 없다. 강압의 경험과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한데 얽힌 모습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201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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