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 레테의 연가, 이문열, 아침나라, 2002
여자에게 결혼은 레테(망각의 강)이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편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 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가야 한다.
나는 지금 그 강가에서 나를 건네 줄 사공을 기다리고 있다. 내 귓전에는 느릿느릿 저어오는 그의 노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리라. 앞서의 수많은 여인들이(櫓) 희망과 기쁨으로 또는 탄식과 눈물 속에 건너간 이 뱃길을 가리라. 강 이편의 그 무엇에도 연연함이 없이.
"아름다움이란 존재만으로도 큰 베풂이죠. 꽃은 우리를 위해 피지 않았고, 또 꽃에게는 그 자신의 생리, 그 자신의 꿈이 따로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언제든 그 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거기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
안목에 혼란에 빠지면 안된다.
여자에게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고 한 말은 어디까지가 맞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정의 무덤인 것은 확실하다.
부부외에 건전한 남녀관계란 없다.
하지만 언제나 한 발 늦는것이 법(法)과 이성(異性)이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범인은 달아나고 감정은 제멋대로 일을 처리한 뒤인 것이다.
나는 능동적으로 화가가 '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되어 져 버린' 것이기 때문이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언제 이 길을 내 삶의 목표로 택했는지 기억할 수 없소.
다만 어느 날엔가 문득 보니 내가 '되어져' 가고 있었소. 깜짝 놀라 이 불길한 운명에서 도망쳐보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늦어 있었소. 성공하지도 못할 도망을 시도했다가 공연히 정규 수업만 망쳐버리고 뒤늦게야 다시 이 길로 끌려오고 만거요.
사람(또는 성)을 자동차의 운전에 비유한 사라 러딕의 말은 옳다.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여러 법규들의 정당함이나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운전석에 오르고 나면 우리는 어린 애 같은 흥분과 쾌감에 모든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사랑의 부도덕한 위험을 잘 알고, 그로 인해 우리 삶에 가해질 위해를 피하려는 결의에 차 있다. 그러나 한 번 사랑에 빠져버리면 우리는 이내 비정한 쾌감과 잔인한 이야기에 휘몰려 모든 것을 잊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사랑이 동물의 성애(性愛)와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도덕성일 것이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것이 명한 금지 가운데 하나에 정면으로 도전하려 하고 있소. 이미 철없는 소년의 놀이일 수는 없단 말이오.
"세상에는 부도덕하고 추한 사랑도 많지 않아요?"
"그런 사랑과 성을 혼동한 결과요. 물론 성은 사랑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
어떤 특정한 인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토록 사적(私的)으로 만드는 것일까?
2012. 4. 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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