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 시학(詩學), 아리스토텔레스, 삼성출판사, 1989(삼성판 세계사상전집6)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년 에게(Aege)해의 북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칼키디케(Chalkidike) 반도의 스타게이라(Stageira)라는 마을에서 출생. 그는 순수한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이오니아(Ionia) 방언이 사용되던 이 도시는 그리스의 변두리에 위치했고, 당시 점차로 커가던 마케도니아 계(系)라 지칭 받기도 했다.
그의 부친 니코마코스(Nikomachos)는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후예라 일컬음을 받았고, 마케도니아이 아민타스 2세(필리포스의 아버지, 알렉산드로스의 할아버지)의 궁정시의(侍醫)로 있었다. 그의 어머니 파이스티스(Phaistis)도 의사 집안 출신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물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사실은 그의 사상적 전개에도 큰 몫을 차지했다. 플라톤(Platon)철학의 열쇠가 수학에 있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열쇠는 생물학에 있다. 원래 플라톤은 수학자가 아니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애당초 생물학자였다. 그래서 그는 개체적 생명을 그의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
어릴 때 양진을 여의고 프롯세톡스(Proxenos)라는 친척의 보살핌을 받다가 18세 때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Akademia)학원에 들어가 플라톤이 세상을 떠난 B.C348년까지 20년간을 거기서 머물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스로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340년에 필리포스가 그에게 섭정을 맡기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궁정을 떠났지만, 거의 알렉산드로스의 재위 중 계속 그와 관계를 맺었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때 정무를 위임받아던 안티파트로스(Antipatros)와는 평생을 두고 우의를 지속하였다.
그 후 안티파트로스의 후원을 받아 리케이온 학원을 건립한다. 리케이온이란 아폴론, 리케이로스에게 봉헌했던 숲의 이름이며, 숲속의 건물을 빌려 사용했는데, 오전에는 제자들과 함께 가로수길(Peripatos)을 거닐거나 숲속에 앉아서 난해한 수학 문제들을 토의하였다. 후일에 아리스코텔레스 학파를 페리파토스 학파라고 칭하게 된 이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도서관을 세웠고, 그 도서관은 훗날 알렉산드리아와 페르가몬(Pergamon)도서관의 모델이 되었다.
B.C 322년 62세이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편 제10권에서 '시'의 폐기처분을 선언하였는데, 거기서 실제의 영상에 불과한 감각적 사물들의 모방자는 영혼이 높고 강한 부분과 대비되는 낮고 약한 부분에 관련되어 있는 자이며, 우리로 하여금 금식해야 마땅한 것들을 먹게하고, 우리가 지배해야 마땅한 것들을 섬기게 하는 자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지어 진다. - "우리들은 시의 옹호자들, 즉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애호하는 사람들에게 운율이 없는 보통의 말로 시를 변호할 기회를 주어, 시는 다만(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감미로운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와 인생에도 유익한 것임을 주장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며, 우리들도 호의를 가지고 그들의 변명을 들어줄 것이다. 왜냐하면 시가 참으로 감미로우며 유익한 것임이 밝혀진다면,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분명 이들이 될테니 말이다."
성격에 있어 추구해야 할 네 가지
1. 성격은 선량해야 한다.
2. 성격이 적합해야 한다.
3. 작품속에 나오는 성격이 전래의 story에 나오는 그 원형(原型)과 비슷해야 한다.
4. 성격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2013. 12.25. (수요일) 크리스마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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