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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주머니 속의 조약돌(A Pebble for your pocket under the rose apple tree)

햇살처럼-이명우 2006. 9. 2. 15:58
 

25. 주머니 속의 조약돌(A Pebble for your pocket under the rose apple tree)

 

틱낫한,  열림원,  2002


  여느 책들과는 다르게 그림도 있다. 천진한 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린 것 같은 순수한 그림이 있다. 때로는 그림이 여러 자의 글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이 있는 한 쪽만 봐도 그 이야기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이 주는 힘이다.


  분노는 울고 있는 어린 아기

  무엇인가 불쾌한 일이 일어날 때, 그 때는 매우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워진다.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고 싶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않는 행동을 하거나 말을 했다고 하자. 그 사람에게 침착한 얼굴로 물어보면 어떨까?

  “왜 그랬어요?”

  하지만 잔뜩 화가 났을 때에는 대체로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쳤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말이나 행동을 하고 싶어진다. 잔인한 말로 되갚아주면 기분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통을 주는 말을 되돌려주면, 그 사람은 더 잔인한 말을 찾게 된다. 양쪽 모두 멈출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화나게 한다면, 말로 대꾸하지 않는 것이 낫다. 먼저 멈추고 호흡명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렇게 한다. “숨을 들이쉬며, 나는 화가 났음을 안다. 숨을 내쉬는데, 화가 아직도 그대로 있구나.”

  이런 식으로 서너 번 호흡하고 나면, 대개는 내 안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내 안의 분노가 누그러진다.

  우리는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행이 필요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이나 덜 고통스러워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분노는 우리의 일부이다. 실제로 화가 났을 때 화가 나지 않는 척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분노를 돌보는 방법이다. 우리는 분노를 돌보는 좋은 방법은 멈추고 호흡명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대의 분노를 그대의 어린아이라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아기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아기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대해야 한다. 어머니가 우는 아기를 달래는 것과 똑 같이 화가 났을 때에는 이렇게 말해보라.


        숨을 들이쉬며, 나는 화가 났음을 안다.

        숨의 내쉬며, 나는 내 분노를 잘 돌본다.


  발걸음마다 평화

        걷는 동안 미소를 지어보라.

        그러면 지금 이곳에 존재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그대가 걷고 있는 곳을 낙원으로 바꾸게 되리라.

        천천히 걸으라.

        걸음을 재촉하지 말라.

        내딛는 발자국마다 그대를

        그대 삶의 최고의 순간으로

        지금 이 순간으로


멈추어서 들여다보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을 단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 하나.

그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 사람이 그에게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 거요?“

말에 탄 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 난 모르오. 말에게 물어보시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또는 왜 서둘러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질주하는 말이 우리를 밀어붙이고 대신 우리 일을 결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따른다.


  앉아서 명상을 할 때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우리의 마음이 고요하고 투명해 지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물속에 가라앉은 진흙과도 같다. 흙탕물을 물 컵에  담아 가라앉도록 놓아두면, 진흙은 천천히 가라앉고 물은 투명해진다. 흙탕물을 휘저으면 진흙이 가라앉을 기회가 없어지게 된다. 진흙이 고요하면, 물은 투명해진다. 그대의 마음도 이와 똑 같다.


  자신을 바다 수면에 일렁이는 한 굽이의 물결로 상상해보라.

그대 존재의 근거(물)를 어루만지는 방법을 안다면 모든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2004. 12. 17


 

틱낫한,  열림원,  2002


  여느 책들과는 다르게 그림도 있다. 천진한 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린 것 같은 순수한 그림이 있다. 때로는 그림이 여러 자의 글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이 있는 한 쪽만 봐도 그 이야기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이 주는 힘이다.


  분노는 울고 있는 어린 아기

  무엇인가 불쾌한 일이 일어날 때, 그 때는 매우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워진다.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고 싶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않는 행동을 하거나 말을 했다고 하자. 그 사람에게 침착한 얼굴로 물어보면 어떨까?

  “왜 그랬어요?”

  하지만 잔뜩 화가 났을 때에는 대체로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쳤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말이나 행동을 하고 싶어진다. 잔인한 말로 되갚아주면 기분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통을 주는 말을 되돌려주면, 그 사람은 더 잔인한 말을 찾게 된다. 양쪽 모두 멈출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화나게 한다면, 말로 대꾸하지 않는 것이 낫다. 먼저 멈추고 호흡명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렇게 한다. “숨을 들이쉬며, 나는 화가 났음을 안다. 숨을 내쉬는데, 화가 아직도 그대로 있구나.”

  이런 식으로 서너 번 호흡하고 나면, 대개는 내 안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내 안의 분노가 누그러진다.

  우리는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행이 필요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이나 덜 고통스러워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분노는 우리의 일부이다. 실제로 화가 났을 때 화가 나지 않는 척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분노를 돌보는 방법이다. 우리는 분노를 돌보는 좋은 방법은 멈추고 호흡명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대의 분노를 그대의 어린아이라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아기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아기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대해야 한다. 어머니가 우는 아기를 달래는 것과 똑 같이 화가 났을 때에는 이렇게 말해보라.


        숨을 들이쉬며, 나는 화가 났음을 안다.

        숨의 내쉬며, 나는 내 분노를 잘 돌본다.


  발걸음마다 평화

        걷는 동안 미소를 지어보라.

        그러면 지금 이곳에 존재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그대가 걷고 있는 곳을 낙원으로 바꾸게 되리라.

        천천히 걸으라.

        걸음을 재촉하지 말라.

        내딛는 발자국마다 그대를

        그대 삶의 최고의 순간으로

        지금 이 순간으로


멈추어서 들여다보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을 단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 하나.

그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 사람이 그에게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 거요?“

말에 탄 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 난 모르오. 말에게 물어보시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또는 왜 서둘러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질주하는 말이 우리를 밀어붙이고 대신 우리 일을 결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따른다.


  앉아서 명상을 할 때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우리의 마음이 고요하고 투명해 지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물속에 가라앉은 진흙과도 같다. 흙탕물을 물 컵에  담아 가라앉도록 놓아두면, 진흙은 천천히 가라앉고 물은 투명해진다. 흙탕물을 휘저으면 진흙이 가라앉을 기회가 없어지게 된다. 진흙이 고요하면, 물은 투명해진다. 그대의 마음도 이와 똑 같다.


  자신을 바다 수면에 일렁이는 한 굽이의 물결로 상상해보라.

그대 존재의 근거(물)를 어루만지는 방법을 안다면 모든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2004.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