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 신의 역사 1, 카렌 암스트롱, 동연, 1999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4,000년 간 유일신의 역사
나는 성자들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 형이상학적 시詩, 엘리엇 T.S.Eliot과 신비주의자들이 쓴 보다 단순한 글 등을 읽었다. 나는 예배의식의 아름다움에 감동되었고, 신이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며 바로 이러한 비전이 창조된 실제 세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을 위하여 나는 수녀원에 들어가 수련 수녀가 되고 수녀까지 되었으며, 신앙에 대하여 많은 것을 비울 수 있었다. 거기서 변증학, 성서, 신학, 교회사 등을 연구했고 수도원 생활의 역사를 탐구했으며, 수녀들 모두 철저히 암기해야 했던 우리 교단의 규율에 대하여 상세한 토론을 했다. 이상하게도 이러한 것들 어디에도 신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아쉬워하며 수녀원 생활을 떠나야 했고, 좌절과 부적응이라는 짐을 벗어버리자 신에 대한 신념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최선을 다해 신을 느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은 결코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신을 믿습니다" 라는 명제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객관적 의미도 없고, 다른 일반 명제들 마냥 오직 특정한 문맥 속에서 특정한 집단에 의해 선표될 때라야만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데 대체 어떻게 아브라함이 위대한 국가의 시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폐경기를 다 넘긴 사라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지 이 약속을 들었을 때 아블함과 사라 모두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러나 가능성이 전혀 없었는데도 마침내 그들에게 자식이 태어났을 때, 그들은 '웃음'을 의미하는 '이삭 Issac'이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 주었다.
베다 종교에서 사람들은 희생제의를 통하여 거룩한 힘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이 신성한 힘을 '브라흐만 Brahman'이라고 불렀다.
사제계급(바라문 Brahmanas)
기원전 538년경, 싯다르타 고타마, 붓다(깨달은 자)가 되었다.
붓다는 신들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신들보다 우월한 것이 바로 열반의 실제라고 믿었다. 불교도가 명상 가운데 희열이나 초월을 경험할 때 그들은 이 결과가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접촉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상태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누구든지 올바르게 살면서 요가의 기술을 배우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붓다는 신에게 의지하기 보다 스스로를 구원하도록 힘쓰라고 제자들에게 권했다.
피타고라스(기원전 6세기) - 소크라테스 - 플라톤(BC 427~346) -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형이상학
탈무드 Talmud : 랍비 요나한, 아키바, 이쉬마엘 등이 모세의 율법을 그 시대에 맞도록 해석한 구전 율법을 성문화한 <미쉬나 mishnah>를 편찬했는데 아모라임 amoraim 이라고 불렀던 학자들이 <미쉬나>에 대한 주석을 시작하여 그것을 집대성한 논설집
예루살렘 탈무드
바빌론 탈무드 - 더 권위 있다.
610년 경 히자지 지역에 번성하는 도시 메카 Mecca에 한 아랍상인이 있었다. 메카의 꾸라이쉬 Quraysh 부족의 일원인 '무함마드 이븐 압달라 Muharnmad ibn Abdallah' 는 매년 '라마단 달 month of Ramadan'에 영적 수양을 위해 가족을 이끌고 메카 외곽의 '히라 Hira' 산으로 떠나곤 했다. 이것은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에게는 지극히 일반적인 관습이었따. 무함마드는 아랍인의 '최고의 신 High God'에게 기도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이 신성한 기간에 그를 찾아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거나 자선을 베풀면서 보냈다.
'꾸란 the quran'(낭송) - 따라 읽어라.
성서의 기술에 따르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단 한 차례의 계시를 통해 전달된 <토라 Torha>와 달리 <꾸란>은 23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무함마드에게 한 구절씩 한 구절씩 계시되었다.
<꾸란>은 아랍어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서양인들에게는 동일한 주제를 계속 반복해 강조하는 따분한 책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꾸란>은 개인적 정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식에서 낭송을 위한 것이다. 무슬림은 <쿠란>이 모스크 mosque(이슬람 사원)에서 낭송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그들은 이슬람신앙의 모든 핵심 원리를 가슴 깊이 되새기곤 한다.
쉬아파 shiah - 호전적, 혁명적 태도
순나파 sunnah(실천)
차례
1. 태초에
2. 유일신
3. 이방인을 위한 빛
4. 삼위일체 : 기독교의 신
5. 통일 : 이슬람의 신
6. 철학자의 신
201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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